내년부터 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고교 한국사 검정(檢定) 교과서들. 2022년 새로 만든 교육과정에 따라 출판사들이 집필해왔고, 교육부 검정 심사를 통과해 30일 공개됐다. /이태경 기자, 그래픽=양인성

내년부터 고등학생들이 사용할 새 한국사 교과서는 총 9종이다. 출판사는 동아출판과 리베르, 미래엔, 비상교육, 씨마스, 지학사, 천재교과서, 한국학력평가원, 해냄에듀(가나다순) 등이다.

본지가 교과서들을 분석했더니, 대다수가 한국이 이룬 경제 성장과 산업화에 대해 긍정적인 서술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상징하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표현이 1종(해냄에듀)만 빼고 다 들어갔다. 대부분 교과서가 정부가 주도한 산업화로 인해 우리 사회·경제가 성장해 의식주 등 일상생활이 긍정적으로 바뀐 점과 도농 격차와 노동 문제 등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사회·환경 문제가 파생한 점도 함께 다루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집필된 교과서들도 경제 성장을 다루곤 있지만, 그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다.

그래픽=양인성

◇9종 모두 ‘북한 정권’

9종 모두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표현했다. 반면 1948년 9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수립은 ‘북한 정권’이 세워졌다고 썼다. 한 교육계 인사는 “그동안 교과서에서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북한은 ‘조선민주주의공화국 수립’이라고 써서 마치 북한에 더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표현한 경우가 많아 논란이 있었는데, 새 교과서에서는 그 부분이 거의 바로잡혔다”고 말했다.

9종 모두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을 설명하면서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했다’고 서술했다. 본래 이번 교과서도 ‘자유민주주의’ 대신 ‘민주주의’로 쓰일 뻔했다. 2022년 8월 이전 정부가 꾸린 연구진들이 발표한 1차 교육과정 시안에는 ‘민주주의’라고 표현돼 있었다. 교육과정은 교과서에 들어갈 개념·내용·체계를 정리한 것으로, 이 내용에 따라 집필진들이 교과서를 쓴다. 현 정부는 이 부분이 문제라고 보고 최종 교육과정에는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꿨다. 당시 정부는 “광복 이후 미·소 대립이 본격화되며 한반도에 냉전 체제가 고착되었고 대한민국은 미국 등 자유민주 진영의 정치·경제 제도 등을 기초로 정부를 수립했다”면서 “당시 북한 정권과 대비되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정통성을 확고히 명시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모든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쓰인 것이다.

◇북 도발 사실 적시

새 교과서는 북한이 일으킨 각종 도발 사실들이 기존 교과서들에 비하면 명확하게 표현됐다는 교육계 평가가 나온다. 9종 모두 천안함 폭침 사건을 다뤘고, 비상교육과 한국학력평가원을 제외한 7종은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임을 명시했다. 예컨대, 해냄에듀는 “그러나 북한은 2009년 핵 실험을 강행하였다. 2010년에는 천안함 피격 사건에 이어 연평도 포격 사건까지 일으키면서 남북 관계를 얼어붙게 하였다”라고 썼다. 현행 교과서도 북한 도발 사실에 대해서도 소개했지만, 도발의 주체가 누군지 애매하게 서술된 부분들이 있다.

새로 공개된 한국사 교과서와 문재인 정부 때 집필된 교과서들은 현 정부 관련 서술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문재인 정부 때 교과서에는 문 정부가 북한과 평화 무드를 조성한 공로를 칭찬하는 등 긍정적 서술이 많았다. 문 대통령 사진을 크게 싣기도 했다.

그런데 새 교과서 9종에는 현 정부에 대한 긍정적 서술이 크게 줄었다. 예를 들어, 리베르와 지학사·비상교육·동아출판·씨마스·해냄에듀 등 6종은 윤 대통령의 당선 사실만 간략히 다뤘다. 한국학력평가원은 ‘공정과 상식을 강조한 윤석열 정부로 다시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는 서술과 함께 작은 캐리커처를 삽입했다. 천재교과서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공정과 상식을 내건 야당의 윤석열 후보가 당선됐다’는 설명과 함께 얼굴 사진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