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돼 교육감직에서 중도 하차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다음 달 16일 치러지는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교육계에선 “비리를 저질러 징역형을 산 인물이 어린 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 선거에 다시 나온다는 건 비상식적”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곽 전 교육감은 5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다른 후보 7명과 함께 진보 진영 단일 후보를 뽑는 경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전교조 출신 강민정 전 민주당 의원이 곽 전 교육감 캠프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곽 전 교육감은 이날 ‘과거 유죄 판결을 부당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취재진 질의에 “저는 내 양심의 법정에서 당당하고 떳떳하다. 판결에 전혀 승복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는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을 낙마시킨 정치 검찰 탄핵, 윤석열 교육 정책 탄핵, 더 큰 탄핵의 강으로 건너가야 한다”며 “이번 교육감 선거는 윤석열 정권 삼중 탄핵으로 가는 중간 심판 선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권 탄핵을 의미하는 것이냐’는 질의에 “귀가 있으면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였던 곽 전 교육감은 2010년 진보 진영 단일 후보로 선거에 나와 선출됐다.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같은 진보 진영 상대 후보였던 박명기 당시 서울교대 교수에게 단일화를 목적으로 2억원을 건넨 혐의로 교육감이 된 지 1년여 만에 수사를 받기 시작했다. 당시 검찰은 곽 전 교육감이 자신의 측근이 돈을 빌려준 것처럼 꾸미려 거짓 차용증을 만들고 돈도 친·인척 계좌로 보내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으로 보고 그를 구속 기소했다.
곽 전 교육감은 재판 과정에서 2억원을 준 것에 대해 “선의(善意)의 부조(扶助)”라고 주장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1·2심과 대법원 모두 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국가 백년대계를 담당하는 교육감이 자리보전을 위해 2억원을 제공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며 질타했다.
곽 전 교육감 비리로 당시 서울 교육 행정은 사실상 공중에 떠버렸다. 그는 2010년 7월 취임하고 1년 2개월 만인 2011년 9월 구속 기소됐다. 2012년 1월 1심에서 30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고 석방돼 복귀했지만, 8개월 만인 같은 해 9월 징역 1년형을 확정받아 수감되며 교육감직을 잃었다. 짧은 재임 기간 ‘학생인권조례’를 밀어붙여 논란을 빚었다.
곽 전 교육감은 2019년 신년 특별 사면 때 복권됐고, 어차피 선거법 위반으로 인한 피선거권 제한 기간(10년)도 지나 출마에 법적인 문제는 없다. 그는 당선 무효형을 받아 국가에서 보전받은 교육감 선거 비용 약 35억원을 반납해야 하지만, 아직 다 내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곽 전 교육감 측은 “꾸준히 조금씩 반납하며 현재 4억~5억원까지 냈다”고 했다. 현행법상 선거보전금을 반환하지 않아도 출마를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
곽 전 교육감의 출마가 그간 문제로 지적된 교육감 직선제의 폐해를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다. 교육감은 유·초·중·고 교육 정책을 책임지고 집행하는 예산도 한 해 11조원(서울)에 달하지만, 학부모가 아닌 이상 관심이 거의 없어 ‘깜깜이 선거’로 불린다. 2022년 전국 17개 교육감 선거 무효표(90만3227표)가 시도지사 선거 무효표(35만329표)의 2.5배에 달했다. 유권자들 관심이 적으니 무효표도 속출한 것으로 분석된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유권자가 교육감 선거에 관심이 없다 보니 ‘정책·자질 싸움’이 아니라 ‘인지도 싸움’이 되면서 후보들도 정파성으로 이름을 알리려고 한다”면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도입된 교육감 직선제가 되레 정치화를 부추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