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다음 달 치르는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자, 정치권에서는 “혈세로 보전하는 선거 비용을 ‘먹튀’해 놓고 출마하는 건 양심 불량”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과거 선거 비리로 당선 무효형을 받은 그는 국가에서 보전받은 선거 비용을 반납해야 하는데, 여태껏 완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허점투성이인 선거 보전금 제도 때문에 이번 출마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6일 교육계에 따르면, 곽 전 교육감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교육감 후보로 출마해 당선 후 선거 비용 35억3700만원을 보전받았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득표율이 15%가 넘으면 선거 비용을 100% 돌려받고, 10~15%면 절반을 받는다.
그러나 곽 전 교육감은 당시 선거에서 진보 단일 후보가 되려 2억원을 주고 경쟁 후보를 매수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로 2012년 9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선거 과정에서 저지른 불법으로 당선 무효형(벌금 100만원 이상)이 확정되면 선거 보전금을 뱉어내야 한다.
그럼에도 곽 전 교육감은 12년이 지난 지금껏 선거 보전금 약 30억원을 반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곽 전 교육감 측은 “액수가 크다 보니 반납하는 데 오래 걸리고 있다”며 “꾸준히 조금씩 반납하고 있다”고 했다.
선거 보전금 제도는 재력이 없는 유능한 사람에게 출마 기회를 주고 선거운동 과열을 막자는 취지로 2004년 총선 때 처음 도입됐다. 그러나 선거 보전금 반납 대상자에 대한 벌칙 규정이 전무하고, 출마 제한 규정도 없기 때문에 돈을 안 내고 ‘버티기’에 나서는 이가 많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1월 31일 기준 곽 전 교육감처럼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고도 선거 보전금을 완납하지 않은 사람은 78명에 달한다. 액수로는 191억원이다.
선관위는 당선 무효형을 받은 이에게 선거 보전금 반납을 안내하고 30일 이내에 돈을 내지 않으면 관할 세무서에 넘겨 재산 조회, 압류 등 조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압류 조치 전 재산을 숨기거나 축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곽 전 교육감은 2012년 11월 재산 압류를 당하기 전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을 명의 이전하는 등 본인 재산을 크게 줄여 논란이 됐다. 결국 당시 세무서가 압류할 수 있는 재산은 거의 없었다.
유권자가 누가 얼마만큼의 선거 보전금을 미납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선관위가 수차례 선거 보전금 미납자 신상 공개 등을 담은 개정 의견을 국회에 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장기 세금 체납 국민의 신상은 공개하면서 유권자를 기망하고 혈세까지 ‘먹튀’한 선거사범 정보는 깜깜이인 것은 지나치게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강제력을 동원해 선거 보전금을 추징하고, 완납하기 전까지 출마를 제한하는 등 벌칙 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세청은 2억원 이상 세금을 1년 이상 체납한 사람의 성명과 연령, 직업, 주소, 체납액 등 상세 신상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이날 기준 3만명 넘는 체납자 정보가 국세청 홈페이지에 게시돼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를 대상으로는 유무죄 여부가 확정되기 전까지 선거 보전금 지급을 유예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지난 21대 국회에서 2건 발의되기는 했지만, 모두 통과되지 못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법이 통과되면 국회의원 후보자들도 선거 비용을 조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국회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보수 진영 단일화를 추진하겠다고 나선 시민 단체 모임인 ‘바른교육국민연합’과 ‘범시민사회단체연합’은 여론조사에서 1위로 꼽힌 이를 단일 후보로 선출하기로 확정하고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후보 접촉에 나섰다. 이들은 오는 9일 후보 등록을 마감한다는 계획이다. 진보 진영 단일화를 추진하는 ‘2024서울민주진보교육감추진위’는 이날 단일화 참석 의사를 밝힌 곽 전 교육감 등 후보 8명과 단일화 방식을 논의하고 이번 주 내로 경선에 돌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