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응급실에 한시적 축소 운영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지역 의료 인재 양성과 필수 의료 체계 확립에 앞으로 5년간 5조원을 투입한다. 현재 추진 중인 의대 증원에 맞춰 의학 교육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또 모든 국립대병원에 ‘임상교육훈련센터’를 세우고, 국립대 의대 전임 교원도 3년간 1000명을 증원한다. 해부 실습용 시신인 ‘카데바’를 병원끼리 공유하도록 법 개정도 추진하기로 했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의 ‘의학 교육 여건 개선을 위한 투자 방안’을 발표했다. 국립대 교육 인프라 확충 등에 교육부가 2조원, 전공의 수련 체계 혁신 등에 복지부가 3조원을 투입한다. 의대 증원에 따라 의대 교육이 부실해지고 의료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대대적인 지원 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내년 예산안에 교육부 6062억원, 복지부 5579억원 등 총 1조1641억원을 우선 반영했다.

한편 정부는 추석 연휴를 전후해 2주간(11~25일) 한시적으로 진찰료·조제료 등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를 대폭 올려주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일 국무회의에서 “의료인들 헌신에 보답하기 위해 특히 중증 응급 환자를 책임지는 권역응급의료센터 전문의의 진찰료를 평소의 3.5배 수준으로 인상했다”고 말했다. 인상되는 진찰료는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고, 환자가 내는 돈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정부는 현장 의료 인력 보강을 위해 군의관과 공보의, 진료 지원(PA) 간호사 등을 최우선으로 배치키로 했다. 또 재정을 투입해 응급실 등 의료 인력 인건비를 직접 지원키로 했다.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10일 ‘2025학년도 의대 정원도 협상 여지가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대화의 전제로서 ‘뭐는 안 된다’ 이런 건 없다”고 밝혔다. 의료계 요구 사항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고 강조해 의료계 참여를 촉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은 “2025학년도 정원을 재조정할 수 없다는 기존 방침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모든 걸 다 논의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한다”는 입장이다.

그래픽=김성규

‘의대 증원’에 대해 의료계 일각이 제기하는 가장 큰 우려는 신입생이 3113명에서 4610명으로 늘어나면 의대의 공간·인력·시설이 부족해 부실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교육부는 전국 의대의 교원과 시설, 기자재 확충에 내년에 2953억원을 투입한다. 기존 시설을 개선하고 건물 신축 등 공사는 관계 부처와 협의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을 통해 신속히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의대 교육과정을 바꾸는 데도 552억원을 투입한다.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단일 단과대학의 교육과정 개선에 500억원 규모를 투자하는 건 사상 처음”이라고 했다.

◇국립대병원마다 임상교육훈련센터

정부는 앞으로 3년간 국립대 의대 전임교수를 1000명 증원하기로 했다. 내년 330명, 2026년 400명, 2027년 270명이다. 또 2028년까지 모든 국립대병원에 ‘임상교육훈련센터’도 짓는다. 의대생과 전공의 등이 실제 병원과 유사한 환경에서 모의 실습을 할 수 있는 시설이다.

정부는 센터 건립을 포함해 국립대병원의 교육, 연구 공간 등을 확충하는 데 내년에 829억원을 투입한다. 또 맞춤형 암 예방 백신 등 국가적 의료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개발 강화에 1678억원을 투자한다.

국립대병원의 보건의료 분야 연구개발과 기초의과학 분야 지원도 늘린다. 국립대병원에서 지역에 맞는 ‘지역의료학’을 신설하거나 의대생들이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지역의료 캠프’ 운영 확대 등에 110억원, ‘의사과학자’를 육성하는 데 867억원을 투입한다.

‘카데바(해부 실습용 시신)’ 제도도 개선한다. 지난달 기준 전국 38개 의대들은 카데바를 평균 54구씩 갖고 있지만, 대학별로 매년 기증받는 카데바 수가 천차만별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기증자·유족이 동의한 경우 대학끼리 카데바를 공유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지역인재전형 선발 62%로

교육부는 비수도권 의대 26곳의 지역인재전형 선발 비율을 2024학년도 50%에서 2025학년도 59.7%, 2026학년도 61.8% 등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지역인재전형은 의대가 있는 지역에서 자란 학생들을 별도로 선발하는 전형이다.

복지부는 지역 의료를 강화하기 위해 지역 수련 병원에 대한 투자도 강화한다. 당장 내년부터 비수도권 전공의 배정 비율을 45%에서 50%로 상향하고, 내년부터 전문의를 대상으로 ‘계약형 필수의사제’도 도입한다. 4개 지역, 8개 진료과목 전문의 96명을 대상으로 월 400만원씩 지역 근무수당을 지원한다. 지역 의료기관에 장기 근무하기로 선택한 전문의가 지자체와 계약하는 방식이다.

한편 정부는 추석 연휴 이후에도 응급실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이번 주 내로 ‘거점 지역응급의료센터’를 전국에 약 15곳 지정하기로 했다. 거점 지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되면 심정지·뇌출혈 등 중증·응급 환자를 담당하고, 최상급 응급실인 권역응급의료센터 수준의 수가를 받게 된다. 정부는 “이번 연휴 기간 일평균 7931곳의 병의원이 문을 열어 설 연휴(3643곳) 대비 2배 이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추석 연휴에 문 여는 병의원의 진찰료와 약국 조제료는 수가 가산율을 기존 30%에서 50%로 높이기로 했다.

정부는 또 응급의료센터와 진료 차질이 예상되는 병원을 중심으로 월 37억원의 인건비를 지원키로 했다. 정윤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의사 160명, 간호사 240명 등 400명 정도 신규 채용이 가능한 예산을 신속하게 지원할 것”이라며 “재정 당국과 협의해 단기 채용으로 끝나지 않도록 재정 뒷받침을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