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중학생 A군은 얼마 전 선배 형들한테 카카오톡 아이디(ID)와 비밀번호를 빼앗겼다. ‘카카오톡 빼앗기’는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 성행하고 있는 신종 학교 폭력이다. 피해 학생에게 “카톡 ID와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겁박한 뒤 엑스(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카톡 계정을 불법으로 사들이는 업자에게 당사자 동의 없이 팔아넘긴다.

초등학교 5학년인 B양은 한 달 전 ‘전동킥보드 셔틀’을 당했다. 중학생 언니들이 B양의 휴대전화를 강제로 가져간 후 인적 사항을 캐물었는데, 며칠 뒤 가입하지도 않은 킥보드 대여 앱에서 B양 휴대전화로 요금이 청구됐다. 가해 학생들이 B양 명의로 킥보드를 빌려 요금을 떠넘긴 것이다.

값비싼 신발이나 가방을 중고 물품 거래 앱에 강제로 올리게 한 다음 팔리면 그 돈을 빼앗는 경우도 있다. 빼앗고 싶은 물건을 중고 거래 앱에 올리게 한 다음 돈은 안 주고 물건을 빼앗는 사례도 있다. 갈취가 아니라, 중고 거래 앱을 이용한 합법적 거래인 듯 포장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래픽=이진영

학교 폭력이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소셜미디어나 중고 거래 플랫폼 등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휴대전화 앱을 이용한 괴롭힘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괴롭힘들은 ‘사이버 폭력’ 특성상 장소 상관없이 24시간 이뤄져 학생들의 고통이 크다고 한다.

25일 교육부가 발표한 ‘2024년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 폭력을 당했다는 학생들이 지난해 5만9000명에서 올해 6만8000명으로, 1년 사이 15% 이상 증가했다. 교육부는 매년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전체 학생(올해 398만명)을 대상으로 학교 폭력 피해 여부를 조사한다.

이 가운데 사이버 폭력 피해 학생은 7.4%를 차지했다. 작년보다 0.5%포인트 높아졌다. 비율은 언어 폭력(39.4%), 신체 폭력(15.5%), 집단 따돌림(15.5%) 다음이지만, ‘신종 학폭’은 대부분 사이버 폭력 형태로 생겨나고 있다. 특히 사이버 폭력 피해 응답률은 초등학생(6.3%), 중학생(9.2%), 고등학생(10.4%) 등 연령이 높을수록 높다.

조현섭 총신대 중독재활상담학과 교수는 “신체 폭력이나 왕따 괴롭힘 등은 학교 공간만 벗어나면 피해가 덜하지만 사이버 폭력은 공간과 상관없이 학생들이 ‘24시간 감옥’에 갇힌 듯 고통을 겪는다”면서 “차라리 한 대 맞으면 남들한테 억울하다고 하소연이라도 할 텐데 사이버 폭력은 피해 사실을 증명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청소년들이 속으로만 끙끙 앓는다”고 했다.

신종 사이버 폭력은 성인들의 범죄와 연루되기도 한다. 예컨대, 가해 학생들은 친구의 ‘카카오톡 계정’을 빼앗아 1개당 10만원 정도에 판다. 이렇게 넘겨진 개인 정보는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할 수 있어 대포폰(다른 사람 명의 휴대전화)처럼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광고, 협박·사기 등 범죄에 이용된다. 일부 가해 학생들은 피해 학생에게 부모나 친구의 개인 정보까지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마약 탄 음료를 건네 마시게 한 후 부모에게 연락해 돈을 요구한 범죄자들도 학생들에게 캐낸 ‘카카오톡 계정’을 이용해 부모에게 연락했다.

게임을 강요해 불법 도박에 빠지게 하는 경우도 있다. 중학교 2학년인 C군은 지난 5월 수학여행을 갔다가 동급생의 강요로 온라인 ‘사다리 타기’ 게임에 동참했다. 처음엔 소액이라도 무조건 돈을 걸어야 하고 안 하면 따돌림 당할까봐 억지로 했지만 이내 재미를 붙였다. 이후 선배가 카톡으로 보내준 온라인 도박 ‘바카라’ 사이트에 접속했다. 도박 자금을 마련하려고 친구들한테 빌린 돈만 100만원 가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