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중학교 교사 강모씨는 지난해 학교에서 졸업 앨범 제작 업무를 맡았다가 곤욕을 치렀다. 동료 교사들에게 “사진을 앨범에 넣어야 하니 사진 활용 동의서를 내달라”고 했는데, 얼굴 실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며 동의를 거부하는 교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강씨는 “교사들은 싫다고 하지, 학생들은 ‘왜 앨범에 어떤 선생님 사진은 있고 어떤 선생님은 없냐’고 묻지, 둘러대느라 진땀을 뺐다”고 했다. 서울 한 초등학교는 올해부터 교사 사진 대신 만화로 얼굴을 그린 캐리커처를 싣기로 했다. 선생님들 얼굴을 아예 빼자니 학생과 교사 모두 아쉽고, 그림으로 그려서 넣으면 사진처럼 엉뚱한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낮아 학교 측이 낸 고육책이다.

학교 졸업 앨범에서 선생님 얼굴이 사라지고 있다. 과거 졸업 앨범엔 학생·교사는 물론 교장·교감·사무 직원들까지 얼굴 사진이 빼곡히 담겼지만 최근엔 선생님들 얼굴 사진이 빠진 졸업 앨범이 늘고 있다. 본인 사진이 ‘딥페이크(인공지능으로 만든 가짜 콘텐츠)’ 성범죄 등에 활용될까 두려워하는 교사들이 급증한 탓이다.

그래픽=김하경

한국교총이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9일까지 전국 유·초·중·고 교사 3537명에게 설문했더니, 93%는 졸업 앨범에 실린 본인 사진이 불법으로 합성돼 ‘딥페이크 성범죄’에 도용되거나 초상권 침해를 당할까 봐 우려된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매우 우려된다’는 응답이 70%에 달했다. 교사 10명 중 7명(67%)은 졸업 앨범을 이제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답했다.

졸업 앨범 사진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학생들과 사진을 찍을 때도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된다는 교사도 84%나 됐다.

이렇게 교사들이 사진을 공개하거나 찍는 걸 꺼리는 분위기는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이 활발해진 수년 전부터 생겨났다. 하지만 지난 8월 말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가 10대들 사이에서도 발생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이후 사진에 거부감을 갖는 교사들이 급증하는 추세다.

18년 차 중학교 교사 민모씨는 “새 학년이 시작되기 전에 학부모들끼리 단톡방이나 인터넷 학부모 커뮤니티 등에서 졸업 앨범의 교사 사진을 돌려보며 ‘얼평(얼굴 품평)’이 벌어진다는 걸 알게 된 후로 앨범에서 내 얼굴은 무조건 빼달라고 학교에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2년 경남 진해에선 배달 앱 게시판에 특정 학교 여교사 4명의 사진 및 실명과 함께 이들을 모욕하는 글이 올라와 경찰이 수사에 나섰는데, 게시판에 올라온 사진들은 5년 전 학교 졸업 앨범에 실린 것이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이달 11일까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 파악한 ‘학교 딥페이크 피해자’는 총 850명으로, 학생이 814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교사도 33명 포함됐다. 나머지 3명은 직원이었다.

졸업 앨범이 처음 나왔던 시절엔 사진이 귀했고, 학교를 졸업한 사실을 기념할 만한 책자가 필요했다. 사진이 흔해진 지금도 사람들 뇌리에 졸업 앨범은 당연히 구입해야 하는 것으로 남아 있다. 10년 차 초등 교사 하모씨는 “6학년 중간에 전학 가더라도 자신이 오래 다닌 학교에서 졸업 앨범을 사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많다”며 “추억을 가져가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교총 관계자는 “졸업 앨범에서 담임 등 교사들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사제 간 사진 촬영마저 피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씁쓸하다”며 “학생들에게 졸업 앨범은 훗날 학창 시절을 떠올리고 은사를 기리는 소중한 매개체인 만큼 없어지지 않도록 딥페이크 등 신종 범죄와 교권 침해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절실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