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강당에서 열린 정근식(오른쪽) 신임 서울시교육감 취임식에서 조희연(왼쪽 앞줄) 전 교육감이 정 교육감에게 꽃다발을 주고 있다. 곽노현(왼쪽 뒷줄) 전 교육감도 함께 축하하고 있다. /뉴시스

17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강당에서 전날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정근식 신임 서울시교육감 취임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곽노현·조희연 전 교육감이 참석해 정 신임 교육감과 맨 앞줄에 나란히 앉았다. 정 교육감은 두 전임 진보 교육감 앞에서 “지난 10년 혁신 교육은 근대 교육 100년의 적폐를 씻어내는 공교육 정상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혁신 교육 성과를 잇되 그 한계는 과감히 넘어서겠다”고 했다.

이번 선거는 조 전 교육감이 ‘전교조 등 해직 교사 부당 채용’으로 유죄를 받아 직을 상실하면서 치러진 선거다. 세금 565억원이 들었다. 조 전 교육감은 직원들 반대에도 해직 교사 부당 채용을 강행했고 그 때문에 교육청 직원 여럿이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조 전 교육감은 법원 판결로 교육청을 떠난 지 한 달여 만에 다시 교육청을 찾아 정 교육감에게 축하 꽃다발을 건넸다. 그는 정 교육감이 건넨 마이크를 잡고 “조희연을 밟고 혁신 교육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달라”며 웃었다.

정 교육감은 조 전 교육감의 서울대 사회학과 1년 후배로 졸업 후에도 함께 연구회 활동을 하는 등 가까운 사이다. 조 전 교육감은 전날에도 정 교육감 캠프를 찾아 그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포옹을 나눴다.

이날 취임식에는 2010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2억원을 주고 경쟁 후보를 매수해 징역형을 받은 곽 전 교육감도 참석했다. 당시 그가 구속 수사를 받으며 서울 교육 행정은 큰 혼란을 겪었다. 이후 2012년 징역형이 확정돼 직을 잃었고 재선거비로 혈세 173억원이 쓰였다.

한 교육계 인사는 “진보 진영이 정 교육감의 당선을 축하할 순 있으나, 불법을 저질러 혈세 수백억원을 쓰게 만든 전임 교육감들이 취임식에 나타나 마치 주인공처럼 희희낙락하는 것은 비교육적인 장면”이라면서 “전임 교육감 잘못으로 치러진 선거인데 정작 변하는 게 하나 없는 것도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정 교육감은 ‘조희연 정책 계승’을 내세우고 있어 앞으로 그의 임기 1년 8개월 동안 서울 교육에 큰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이날 정 교육감은 업무를 시작하면서 기초 학력 저하와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한 ‘학습진단 치유센터 설치’를 1호 안건으로 결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단순히 학력을 높이고 좋은 대학 가려고 공부하는 것이 교육의 본질은 아닐 것”이라며 “교육으로 인한 차별과 격차가 생기지 않게 챙기겠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정 교육감은 이날 오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지필 평가 확대 등 시험·경쟁 강화에 반대하는 자신의 생각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일제고사식 필기시험 부활은 학교 현장에 큰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했다. 대신 “결과보다 과정을 평가해야 한다”며 수행 평가(단원평가)는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정 교육감은 이번 선거에서 교육열이 높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에선 보수 후보보다 득표율이 낮게 나왔다. 학부모들이 그가 학생 학력 신장에 소홀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에 대해 정 교육감은 “저에 대한 강남 3구 학부모님의 걱정을 덜 수 있도록 앞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의회를 상대로 조 전 교육감이 냈던 ‘학생인권조례 폐지 무효 소송’을 이어가 조례 폐지를 막아낸다는 입장이다. 정 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 폐지 때문에 교권이 추락했다는 근거가 없다”고 했다. 그는 조 전 교육감이 역점을 뒀던 혁신학교, 생태전환교육 등 정책도 계승해 발전시키겠다고도 했다.

‘윤석열 정부 교육 정책 심판’을 내세워 당선된 정 교육감이 앞으로 정부 교육 정책과 충돌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정 교육감은 교육부가 내년 3월 도입을 추진 중인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해 이날 “실제 교육 효과를 확인한 후 도입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특히 그는 현 정부의 역사 교육이 편향돼 있다고 본다. 학계 전문가로 꾸려진 ‘서울교육청 역사위원회’를 설치해 현재 역사 교육을 점검하고 관련 센터를 만들어 교육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두고 “학교 현장이 ‘역사 전쟁터’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