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정부청사 여성가족부./조인원 기자

지난달 중순 새벽 2시,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한 청소년 쉼터에 15세 A군이 찾아왔다. 쉼터 관계자는 “네가 여기에 온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려야 하니 연락처를 달라”고 말했다. 부모 동의가 없으면 24시간 이상 쉼터에 머물 수 없다. 하지만 A군은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고 버티다 결국 쉼터에서 잠깐 눈만 붙인 뒤 사라져 버렸다.

여성가족부가 부모의 폭력과 학대 등을 피해 가출한 청소년들이 의탁할 수 있는 청소년 쉼터를 전국 105군데 운영하지만, 이용률이 매우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표한 ‘가정 밖 청소년이 쉼터에 입소하지 못하는 이유’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가출 경험이 있는 청소년 10만5700명 가운데 5.5%(5800여 명)만 쉼터에 들어갔다.

청소년 쉼터는 만 9~24세 청소년이 입소 신청 후 상담받으면 대부분 들어갈 수 있다. 길게는 4년까지 머물 수 있다. 의식주를 무료 제공할 뿐 아니라, 심리 상담이나 교육도 지원한다. 쉼터 퇴소 후에도 최대 5년까지 매달 40만원씩 자립 지원 수당을 준다.

이런 혜택에도 쉼터 이용률이 저조한 것은 입소하려면 부모에게 연락하도록 한 여가부 지침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청소년들이 가출하는 가장 큰 이유가 부모와의 불화인데, 부모에게 연락부터 해야 하니 쉼터를 꺼린다는 것이다. ‘2024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 가출 사유 1위가 ‘부모와의 문제’(52%), 2위는 ‘학업’(22%)이었다. 부모와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뭔지 물었더니, ‘부모에게서 언어폭력이나 신체적 학대를 당했다’는 대답이 70%가 넘었다.

여가부가 쉼터 이용 시 부모에게 의무적으로 연락하게 한 것은 친권자의 ‘거소 지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민법상 만 18세 이하 청소년은 친권자가 지정한 장소에 거주해야 한다. 이 때문에 쉼터도 보호자에게 아이가 쉼터에 있다고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여가부는 ‘부모에겐 쉼터 입소 사실만 전할 뿐 아이가 원치 않으면 위치는 밝히지 않는다’고 하지만, 현장에선 위치까지 알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부모를 피해 제 발로 쉼터에 오는 아이를 도로 내쫓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허 조사관은 부모 폭력 등으로 가출한 16세 이상 청소년은 일단 보호부터 해주고, 추후 설득해 부모에게 연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