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부터 올해 1학기까지 자퇴한 서울대 신입생 611명 가운데 가장 많은 187명이 공대생이었다. 상당수가 의대 등 의·약학 계열 대학에 가기 위해 그만둔 것으로 추정된다. 왜 공대생들은 공대를 떠나 의대로 가려 할까. 과거 공학도였던 의대생과 전공의 5인에게 물어보니 “지금 우리나라 공대엔 미래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가장 큰 이유로 꼽은 것은 ‘불확실성’이었다. 학교와 병원에서 하라는 공부와 수련만 잘하면 ‘의사 면허증’이 나오는 의대와 달리, 공대는 취업도, 교수 임용도, 고소득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고려대 공대를 졸업하고 2017년 의대에 간 전공의 김모(29)씨는 공대 대학원에 가 바이오 분야의 연구원이 되고자 했지만, 졸업 후 의학전문대학원에 편입했다. 김씨는 “미래 노벨상을 수상하는 졸업생이 나오기를 꿈꾸면서 고려대에서 만들어 놓은 공간인 ‘노벨 광장’을 보며 ‘저기에 내 이름을 올리겠다’는 꿈을 가졌었지만 한계가 많았다”며 “교수 임용도 안 되고, 대기업을 다니다가 무력감을 느껴 퇴사한 공대 친구들 보면서 의대에 온 결정을 너무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려대를 다니다 1학년 때 수능을 다시 봐 지방대 의대에 합격한 김모(22)씨는 “공대를 다닐 때 영어 인증시험이나 컴퓨터 자격증 시험 응시를 해야 하는데, 전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지금 휴학 의대생 신분으로 한 해를 허송세월하고 있지만, 안정적인 삶과 노년까지 미래가 보장된 의대에 온 것을 조금도 후회 안 한다”고 말했다.
‘낮은 처우’도 문제다. 공대도 대기업 연구원이 되거나 교수가 되려면 석·박사를 따야 하는데, 그만큼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울 지역 공대에 들어갔다가 다시 의대로 옮긴 박모(23)씨는 “1학년 첫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교수님이 ‘전공을 살릴 거면 대학원을 가야 하고, 유학 갈 필요도 있다’고 하시더라”면서 “유학에는 돈도 많이 들고, 대학원에서 100만~200만원 받으면서 10년씩 공부를 해야 한다면, 차라리 의대 가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공의 1년 차인 최모(29)씨는 “하다못해 소개팅 자리도 유망한 공대 연구원보다 수입 없는 의대생한테 훨씬 더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서울대 공대 3학년 때 자퇴 후 의대에 간 이모(27)씨는 “항공 쪽에 관심이 있었지만, 학부생 시절 합격한 회사는 삼성전자의 무전사업부였다”며 “전공도 못 살리고 전문성 없는 분야에서 ‘회사 부품’이 될 것 같다는 조바심이 들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