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에 반발한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가 8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동맹 휴학은 절대 승인하지 않겠다던 정부는 지난달 6일 내년 3월 복귀 의사를 밝힌 학생들에 대한 ‘조건부 휴학 승인’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23일 만에 이를 철회하고 조건 없이 ‘각 대학 자율적으로 휴학 승인’ 방침으로 물러섰다. 지난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에 대해 “정부와 의료계의 신뢰 회복을 위해 의대 학장님들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해야 한다고 판단해 방침을 바꾼 것”이라고 밝혔다. 의대생 휴학 승인으로 내년에 올해 1학년생과 내년 신입생 약 7500명이 동시에 수업을 받는 사태가 현실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대 교육의 질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오히려 세계 최고 수준이 될 것이니 믿어 달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갑자기 휴학 승인 방침을 바꾼 계기는.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지지 않으니 어떤 정책을 발표해도 진정성이 왜곡되는 일이 계속됐다. 의료 개혁을 함께 이끌어가야 할 의대 학장님들과의 대화도 그간 순조롭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에서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조건으로 의대생 휴학 승인을 내걸었다. 정부가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정부와 의료계의 신뢰 회복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봤다.”
-휴학을 승인하면 의대생들이 내년 3월에는 돌아올 것이라고 보나.
“내년에는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근거는?
“의대 교육은 대체로 1년 단위로 짜여 있다. 1학기에 쉬면 2학기에 돌아오기 쉽지 않다. 내년 3월에도 복귀하지 않으면 2년을 쉬게 된다. 의대생 본인들 커리어에 엄청난 타격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정부도 학생들이 이처럼 큰 손해 보는 일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의정 갈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정부가 대승적으로 의료계 요구를 수용하며 의료계와 신뢰 구축이 시작됐다. 여·야·의·정 협의체도 발동이 걸렸지 않나. 이게 갈등 해소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본다.”
-돌아와도 문제다. 7500명이 동시 수업하면 교육의 질 담보할 수가 있나.
“의대 증원에 따른 의학 교육 개선을 위해 5조원을 쏟기로 결정됐다. 국립대 의대 전임교수만 1000명을 증원한다. ‘5조원에 교수 1000명’. 교육 역사상 이만한 규모의 투자가 이뤄진 적이 없다. 인력부터 시설, 각종 실험·실습 기자재까지 전방위적 투자가 이뤄지는 것이다.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가 없다. 오히려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6년제인 의대 교육 과정을 ‘5년제’로 단축할 수 있다고 해 의료계 반발이 컸다.
“교육 과정이 여유 있다고 판단하는 대학은 원하면 자율적으로 축소 운영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교육부가 모든 의대에 5년제를 도입하라고 강압하는 게 전혀 아니다. 의도가 180도 다르게 왜곡 전파됐다.”
-전공의·의대생 등은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계는 올해 수시에서 채우지 못한 정원을 정시로 이월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의대 정원 축소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미 발표된 2025학년도 모집 요강에 수시에서 모집하지 못한 인원은 정시로 이월한다고 적혀 있다. 학생과 학부모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의료계 일각에선 2025학년도 증원 재검토 안 해서 국민이 입을 피해가 의대 지망생 수천 명이 입을 피해보다 크지 않으냐고 한다.
“이번 의대 수시 지원자 수만 7만명이 넘었다. 정시까지 합하면 10만명 넘을 것이다. 갑자기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철회하면 피해가 막심하다. 의대 입시는 다른 전공 입시에도 도미노처럼 영향을 준다. 입시에 대혼란이 찾아와 사실상 모든 수험생이 피해자가 된다. 누구 피해가 더 큰지 경중을 따지기 어려운 문제다. 입시에 대한 국민 신뢰를 해칠 수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주장처럼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유예는 가능한가.
“정부는 2026학년도 의대 정원에 대해선 열린 자세로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이다.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은 내년 4월 확정해 발표해야 한다. 의정 협의가 얼른 시작되어야 한다.”
-의대생 휴학을 승인하면 등록금을 환불해야 한다. 재정 문제로 휴학 승인을 곤란해하는 대학도 있다.
“재정 문제 때문에 휴학 승인이 안 되는 건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대학들이 일시적으로 손해 볼 순 있지만 의대에 투입하는 정부 예산이 막대하다. 의대 정원이 늘어난 대학은 국립·사립 구분 없이 지원하겠다.”
-의대 증원 발표하고 8개월 지났다. 아쉬운 점 없었나.
“의대를 많이 방문했다. 시설이 굉장히 열악하더라. 최고 인재들이 가는 곳인데 이런 곳에서 어떻게 최고의 교육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
-내년 초3·4, 중1, 고1 대상 AI디지털교과서가 전면 도입된다. 디지털 기기 과사용을 부추긴다며 도입을 반대하는 학부모가 많다. 도입 시기를 늦출 계획은 없나.
“11월 말 교과서 검정 결과가 발표된다. 도입을 미룰 순 없다. 다만 2026학년도 적용 교과목은 현장 의견을 수렴해 조정을 협의하겠다.”
-그동안 교육 개혁 지휘하면서 가장 잘했다고 자평하는 건.
“’늘봄학교’가 이번 2학기 모든 초등학교 1학년에 도입됐다. 참여율이 80%가 넘는다. 부산교육청이 학부모 상대로 만족도 조사를 했는데 ‘만족한다’ 응답이 95%를 넘었다. 교육 정책에서 만족도가 90% 넘는 건 본 적이 없다. 대통령부터 일선 교직원까지 모두 열심히 노력해서 만든 결과다.”
☞이주호
1961년 대구 출생으로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박사(경제학) 학위를 받은 뒤 한국개발연구원(KDI) 정책대학원 교수를 지냈다. 17대 국회의원(비례)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차관과 장관을 역임했다. 2022년 11월부터 두 번째로 교육부 장관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