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영국 글로벌 대학 평가 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공동으로 실시한 ‘2024 아시아 대학 평가’에서 중국 베이징대가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대학 중에선 연세대가 9위로 유일하게 ‘톱 10′에 들었다. 국내 대학 절반이 작년보다 순위가 뒷걸음쳐 국제 경쟁력 약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위 베이징대에 이어, 2위 홍콩대, 3위 싱가포르 국립대, 4위 싱가포르 난양 공대까지 모두 작년과 순위가 같았다. 작년 7위였던 중국 푸단대는 5위로 올라섰고, 4위였던 중국 칭화대는 7위로 떨어졌다.
올해 평가는 25국 대학 984곳 순위를 매겼다. 우리나라 대학 101곳 가운데 47곳이 순위가 떨어졌다. 25곳은 제자리걸음을 했고, 14곳은 순위가 올랐다.
‘톱 20′에 든 국내 대학은 6곳이다. 한양대가 작년보다 일곱 계단 순위를 올려 19위를 기록, 처음 20위권에 진입했다. 성균관대(16위)도 전년보다 세 계단 올랐다. 고려대는 작년 9위에서 올해 13위로 네 계단 하락했다. 서울대도 16위에서 18위로 떨어졌다.
국내 대학들의 순위가 떨어진 가장 큰 요인은 연구의 양과 질 모두 뒤처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교수들이 얼마나 활발하게 연구하는지 평가하는 ‘교원당 논문 수’ 지표에서 올해 100위 안에 든 국내 대학은 지스트(6위), 디지스트(21위), 카이스트(57위), 포항공대(61위), 유니스트(97위) 등 5곳뿐이다. 중국 대학들은 100위 내에 34곳이나 이름을 올렸다.
연구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논문당 피인용 수’ 지표에서 100위 안에 든 국내 대학은 유니스트(14위), 세종대(20위), 포스텍(51위), 동국대(61위), 고려대(66위) 등 10곳이었다. 서울대는 148위에 그쳤다. 반면 같은 지표에서 100위 안에 든 중국 대학은 48곳에 달했다.
국가 성장 엔진인 대학들의 연구 경쟁력이 이렇게 추락한 것은 정부가 대학을 규제할 뿐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16년간 지속된 ‘대학 등록금 동결 정책’ 등으로 한국 대학은 재정난을 겪으며 연구·개발에 제대로 투자하지 못하고 있다. 낮은 교수 연봉 때문에 뛰어난 인재들을 해외 대학이나 기업에 빼앗기고 있다.
반면 중국이나 싱가포르 정부는 ‘대학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라는 기조 아래 20년 전부터 대학의 연구·개발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1년 반도체를 ‘7대 핵심 육성 기술’ 중 하나로 꼽았고, 같은 해 베이징대는 3억위안(약 580억원)을 들여 반도체 단과대학을 설립했다. 매년 1000명 넘는 반도체 설계·제조 분야 인재 배출이 목표다. 같은 해 푸단대도 반도체 연구 등에 4억7000만위안(약 900억원)을 투자했다.
싱가포르 국립대의 1년 예산(2021년 기준)은 2조9228억원으로 서울대(1조7921억원)를 훌쩍 앞선다. 난양 공대(1조9317억원) 예산은 카이스트(9738억원)의 두 배에 달한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15년 전만 해도 우리보다 수준이 한참 떨어졌던 푸단대가 지금은 한국 대학들보다 순위가 높은 것은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라면서 “특히 인공지능(AI) 등 첨단 분야에서 우리보다 앞서는 중국 대학이 많다”고 말했다.
벤 소터(Sowter) QS 수석 부사장은 “한국은 ‘톱 20′에 여섯 대학이 진입해 아시아에서 가장 많았지만 전반적으로는 하락세”라며 “한국 대학은 해외 인재 유치와 자금 조달 등에서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김정호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이공계 분야는 투자하는 만큼 성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우리는 최근 들어 반도체와 AI에 정부 투자를 늘리겠다고 하고 있지만 중국에 비하면 부족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