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강원 춘천시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에서 열린 '단체협약 사수를 위한 농성 투쟁 돌입 기자회견'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강원지부가 교육 당국을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도 교육청은 나흘 전 교육 자율권 훼손을 이유로 전교조 강원지부와의 단체협약 실효(효력을 상실함)를 선언, 전교조 강원지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도교육청은 내년 일부 학년에 ‘AI(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가 전면 도입되는 데 대비해 올 6월부터 도내 교사 수천 명을 대상으로 연수를 추진했다. 새로운 형식의 교과서가 도입되는 만큼 교사들이 연수를 통해 활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목표 인원의 절반밖에 못 채웠다. 전교조 강원지부와 맺은 단체협약(단협)이 문제였다. 단협 조항에 ‘연수 참여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어 참여를 의무화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교사들에게 일일이 참여를 부탁해야 해서 속도가 더뎠다고 한다.

교육청들이 전교조와 맺은 단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교원노조법은 노조와 사용자(교육청)가 교원의 임금, 근무 조건, 복지 등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단협을 맺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교육청들이 전교조와 맺은 단협은 이런 범위를 한참 벗어난 것이 많다. 각종 교육 행정까지 간섭하는 단협 내용 때문에 교육청 운영이 어렵다는 것이다.

강원도교육청이 대표적이다. 보수 성향인 신경호 강원교육감은 2022년 ‘학력 향상’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다. 공약을 이행하려 초 4~6학년, 중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학력을 진단하는 평가를 개발했다. 그런데 진보 성향인 전임 민병희 교육감이 전교조 강원지부와 맺은 단협 때문에 계획대로 평가를 시행하지 못했다. 단협에 ‘초등학교 일제 평가 근절’ 조항이 있어 희망하는 학급만 평가를 실시할 수 있었다. 강원교육청은 또 전교조 단협의 ‘교육감 표창 폐지’라는 조항 때문에 올 초 교육감이 모범 졸업생들에게 주려던 표창 수여자를 대폭 줄여야 했다.

그래픽=김성규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강원교육청은 작년 6월 전교조 강원지부에 교육청 권한을 침해하는 조항 약 430개를 수정·삭제하자며 단협 갱신을 요청했다. 전교조와 여러 차례 협의했지만 협의에 실패했고, 결국 신 교육감은 지난달 28일 단협 효력 상실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지난달 31일 전교조 강원지부 조합원들이 거세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신 교육감이 넘어져 병원에 입원하는 사고까지 벌어졌다. 신 교육감은 8일까지 여전히 입원한 상황이다.

진보 성향인 서거석 교육감이 이끄는 전북교육청도 전교조 전북지부와 맺은 단협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1월 약 140조항이 교육청 권한을 침해한다며 단협 갱신을 요구했는데, 아직 협의를 끝내지 못했다. 전북교육청은 단협에서 특히 ‘전북교육과정위원회 및 분과별 위원회에 전교조 전북지부가 위원 정수의 20%가 되도록 추천한다’는 조항이 가장 문제라는 입장이다. 이 조항 때문에 교육청 각종 위원회에 전교조 측 인사가 무조건 20%씩 들어가 있는데, 학부모·교사·전문가 등 다양하게 구성돼 교육 정책 방향을 수립하는 위원회들이 특정 집단 입김에 휘둘리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단협에는 또 ‘컨설팅(장학 지도)은 학교 요청이 있을 시 시행한다’는 조항도 있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장학 지도는 교육청의 핵심 역할이자 권한인데, 단협 때문에 원할 때 지도를 하지 못하고 학교에 ‘장학 지도를 요청해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정선 광주교육감은 전교조 광주지부와 맺은 단협 때문에 검찰 수사까지 받았다. ‘오전 8시 30분 이후 등교’ ‘야간 자율 학습 금지’ 등 내용 때문이다. ‘학력 신장’을 내세웠던 이 교육감은 취임 후 이 조항을 무시하고 등교 시간과 야간 자율 학습을 각 학교 자율에 맡기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 이에 일선 고교에서 8시 30분 이전 등교(일종의 ‘0교시’)와 야간 자율 학습 부활을 추진하자, 전교조 광주지부가 이 교육감을 노조법 위반 혐의로 작년 4월 고소한 것이다. 이 교육감은 지난 5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교육계에선 전교조와의 단협 때문에 교육청이 제대로 교육 정책을 펼치지 못하는 걸 막기 위해서 교원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교원노조법에는 노조와 맺을 수 없는 단체협약 조항에 대한 명시적 조항이 없다. 반면 공무원노조법에는 ‘법령 등에 따라 국가·지자체가 권한으로 행하는 정책 결정에 관한 사항, 임용권 행사 등 기관 관리·운영에 관한 사항으로서 근무 조건과 직접 관련되지 아니하는 사항은 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교원노조법에는 이런 명시 조항이 없기 때문에 교육감들이 전교조와 문제 있는 단협을 체결하는 걸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