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국가장학금 지원 대상자가 대폭 늘어나 전체 대학생의 75%가 대학 등록금을 지원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전국 대학생 200만명 중 절반 정도가 받는데, 내년엔 1년 만에 50만명이 늘어 150만명이 받게 된다. 국가장학금 총예산은 사상 처음 5조원을 돌파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21일부터 ‘2025학년도 1학기 국가장학금’ 신청을 받는다고 밝혔다. 대학생 국가장학금은 학생 가구의 소득(재산 포함)을 10구간으로 분류해 차등 지급한다. 올해까지는 8구간 이하만 줬는데, 내년부턴 9구간 이하도 준다. 가장 소득이 높은 10구간을 제외하곤 9구간까지 모든 가구가 세금으로 대학 등록금을 지원받는 것이다. 가장 소득이 적은 기초·차상위 가구는 등록금 전액을, 9구간은 100만원씩 받는다.

9구간의 월 소득 인정액은 1220만~1829만원(4인 가구 기준)이다. 소득 인정액은 월 소득에다 부동산·차량 등 재산을 합해 환산한 금액으로, 국회예산정책처가 9구간의 월 소득 인정액을 통계청 소득 10분위(2023년 3분기)로 환산해보니 6~8분위(606만~806만원)에 속했다. 월 소득 800만원이 넘는 가구 학생도 내년부터 연간 국가장학금 100만원을 받는 것이다. 다자녀 가구 대학생에게 주는 장학금도 올해는 8구간 이하에 줬지만, 내년엔 9구간(최대 200만원)도 준다.

그래픽=김성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세수 펑크’가 심각한 상황에서 과도한 포퓰리즘 정책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세수 결손분이 29조6000억원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내년에도 세수 결손이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여당이 올 초 총선을 앞두고 ‘청년 지원’ 공약으로 내놓은 국가 장학금 확대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국가장학금 지원 구간을 8구간 이하에서 9구간 이하로 확대한 것은 대학생 자녀를 둔 중산층들의 국가장학금 체감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올해 국가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전체 대학생의 약 48%다. 둘 중 한 명은 지원을 아예 못 받는 셈이다. 그간 대학생 사이에서 “평범한 중산층 가정인데도 아무 지원을 못 받는다”는 볼멘소리가 많았다.

그렇다고 해도 세수 결손이 심각한 상황에서 지원 대상을 갑작스레 50만명이나 늘리는 것은 지나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교육부는 2025년도 예산안에서 내년 국가장학금 총예산으로 5조3134억원을 편성했다. 올해 4조7205억원에서 1년 만에 5929억원(12.5%)이 늘었다.

증액 예산 가운데 학자금 지원 대상을 기존 8구간 이하에서 9구간 이하로 확대해서 늘어난 부분이 3878억원이다. 나머지는 근로장학금 지원 대상 확대(1705억원), 대학생 주거비 지원 장학금 신설(344억원) 등 때문이다.

월 소득 800만원이 넘는 가정까지 국가에서 등록금을 지원하는 것을 두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청년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대학 취학률은 74.9%다. 4명 중 1명은 대학에 안 가는 상황에서 세금으로 대학에 가는 학생들만 폭넓게 지원하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내년 장학금 지원 대상이 갑자기 급증한 것은 9구간에 그만큼 많은 가구가 몰려 있기 때문이다. 기존 지원 대상인 8구간 이하는 구간별 4만~17만명 정도인데, 9구간은 50만명에 달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교육계에선 “장학금 지원 대상을 9구간까지로 확대하려면 ‘구간 재설계’부터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는 그런 조치 없이 지원 대상만 확대해 버렸다.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도 최근 발간한 ‘2025년도 예산안 분석 보고서’에서 무분별한 국가장학금 확대가 불러올 문제를 지적했다. 예정처는 “현행 9구간 범위가 넓어 과도한 재정 부담이 발생하고, 국가장학금은 지출 구조 조정이 어려운데 등록금 인상 등 단가 인상 유인이 있어 향후 예산 소요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원 구간 재설계를 통해 정교한 지원을 도모하고, 급격한 재정 소요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어렵게 확보한 대학 예산을 ‘포퓰리즘 정책’에 쓴다는 지적도 많다. 교육부는 내년 고등교육 예산을 올해보다 1조802억원 늘어난 총 15조5574억원으로 편성했다. 그런데 늘린 예산의 55%가 국가장학금에 투입됐다. 대학 경쟁력 강화에 쓰일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예산 상당 부분이 장학금 증액에 투입된 것이다. 한 수도권 사립대 총장은 “16년 넘게 ‘등록금 동결 정책’이 계속되면서 대학들 재정이 열악한데, 학생 등록금 지원에만 예산을 투입하는 게 맞느냐”면서 “정부가 국가장학금 지원 대상이 늘어났다는 이유로 ‘등록금 동결’을 더 강요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학 등록금이 비싸지면 정부의 국가 장학금 예산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국가장학금 확대는 대학 입장에선 학생에게 받을 걸 세금으로 받는 것일 뿐, 수입에 변화가 전혀 없다”면서 “중국, 미국처럼 전반적인 대학 경쟁력 확대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