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사는 김모군(17)은 지난 2월 사이버 도박 사이트에 가입했다. 친구가 “이런 게 있다”며 종종 카지노 게임 ‘바카라’를 보여줬는데, 자기도 돈을 딸 수 있는지 궁금했다. 김군은 첫날 1만원으로 바카라 등을 해 8만원을 땄다. 돈이 쉽게 벌리자 재미가 생겼다. 그게 중독의 시작이었다. 하루 10시간씩 바카라만 하는 날이 늘었고, 판돈은 10만~15만원, 100만원으로 점점 커졌다. 주변에서 돈도 빌렸다. 그만두려고 참아도 봤지만, 빌린 돈을 갚으려고 다시 도박에 몰두했다. 김군은 “한 번에 1000만원도 따봤다. 한 방에 돈을 버니 아르바이트보다 도박으로 빚을 갚는 데 매달리게 되더라”고 했다.
지난 12일 오전 전북 무주군 안성면에 있는 국립 청소년 인터넷 드림마을(드림마을)에 김군을 포함해 사이버 도박에 중독된 중·고교생 17명이 모여 있었다. 드림마을은 인터넷 중독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만 13~18세 청소년을 위해 2014년 여성가족부가 만든 합숙 치유 시설이다. 무주군 시내에서 24㎞ 떨어진, 논밭으로 둘러싸인 폐교를 고쳐 만들었다. 개소 후 줄곧 인터넷·스마트폰 중독 치유 캠프를 열다, 재작년부터 사이버 도박 중독 치유 캠프도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청소년 도박 중독이 급증한 탓이다. 경찰청이 최근 1년여간 사이버 도박 특별 단속을 했더니, 검거된 9971명 중 47.2%(4715명)가 청소년이었다.
기자가 찾은 날은 11박 12일짜리 캠프의 9일째 되는 날이었다. 김군 등 남학생 8명이 ‘사이버 도박의 불법성’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상담사가 “칠판에 오늘 수업에서 느낀 점이나 다짐을 적어보자”고 하자 아이들이 보드 마카로 한 자 한 자 정성껏 썼다. ‘청소년 도박은 처벌받을 수 있다!’ ‘두 번 다시 도박 안 한다 절대’ ‘단도박(도박을 끊음) 성공하기. 행복한 사람 되기’···. 드림마을 관계자는 “친구 따라 가볍게 한번 해본 게 중독으로 이어져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면 참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아이들은 오전엔 집단 상담, 오후엔 개인 상담과 예체능 활동을 한다. 휴대전화는 절대 못 쓴다. 강제로 ‘단도박’ 할 수밖에 없다. 17명 대부분 혼자 여러 차례 도박 중단을 시도했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 캠프에 스스로 찾아온 아이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 교사나 부모 권유로 왔다. 뭘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끌려온 아이들도 있다.
처음 아이들은 휴대전화 없는 생활을 못 참고 아우성이었다. 충남에 사는 중2 이모군은 “담임 선생님이 ‘캠프 가면 휴대전화 하면서 놀 수 있다’고 했는데, 속은 걸 알고 퇴소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군은 작년 7월 친구가 “한번 해보라”며 알려준 바카라에 중독돼 800만원을 잃었다. 그런데도 ‘안 하면 손해’라는 생각으로 계속 도박을 할 정도로 중독이 심했다.
하지만 이군을 포함해 이날까지 퇴소한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강제였지만 휴대전화와 멀어지니 새로운 게 보였다. 도박을 알기 전, 일상에서 느꼈던 재미를 되찾은 것이다. 이군은 “여기 와보니 도박 대신 책 보고 운동하는 게 더 재밌는 것 같다”며 “빨리 친구들 만나서 축구하고 싶다”고 했다.
중독이 심했던 김군도 캠프에서 ‘내가 좋아하는 게 뭐였는지 다시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했다. 그는 “상담을 받으면서 ‘내가 이런 것도 잘하는구나’ 알게 됐다”면서 “원래 작곡가가 꿈이었는데, 나가선 도박 말고 작곡에 에너지를 모두 쏟아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고 했다.
캠프는 아이들 인식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춘다. 도박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 시간에 ‘도박에 대해 바뀐 생각을 써보라’고 하자, 아이들은 ‘도박은 거짓이다. 돈을 딸 수 없고 무조건 잃는다’ ‘도박은 사기’라고 적었다. 경남 지역 고2 박모군은 “도박을 한 내가 부끄럽고 싫지만, 도박이란 걸림돌에서 스스로 빠져나오고 현실을 깨닫게 됐다”고 적었다.
전문가들은 “캠프 이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도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심용출 드림마을 부장은 “캠프 이후 도박을 안 하는 기간이 이전보다 길어지는 것도 크게 발전한 것”이라면서 “재발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단도박 기간을 점차 늘려갈 수 있게 주변에서 꾸준히 격려하고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