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대학 교육은 입학 때 선택한 학과와 전공을 졸업 때도 그대로 하기를 당연히 여겼다. 내년부터 여러 대학이 이런 통념을 깨고 학교를 다니면서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무전공 제도’를 도입한다. 그중에서도 국민대는 수도권 주요 대학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을 ‘무전공(전공 자율)’으로 뽑는다. 신입생 2966명 중 1140명이다.
과감하게 혁신을 이끈 정승렬(62) 국민대 총장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종전 교육 체계에서 끊임없이 문제로 지적돼 온 학문 영역, 교육과정, 교과·비교과, 학년 간 칸막이를 뛰어넘겠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작년 9월 취임한 정 총장은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와 사우스캐롤라이나대에서 경영정보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97년 국민대 정보관리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국민대 무전공 제도는 두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인문·자연·예체능 등 계열 구분 없이 전체 학과·전공 중에서 원하는 걸 자유롭게 선택하는 1유형과, 특정 단과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하는 2유형이다. 내년에 1유형 828명, 2유형으로 312명이 입학한다. 둘 다 입학 후 다양한 전공을 체험한 뒤 1학년 2학기 말에 전공을 결정한다. 정 총장은 “인공지능(AI) 시대에 사회가 원하는 융합형 인재를 길러내려면 학문·물리적 경계가 없는 교육 생태계 구축이 핵심”이라며 “고3 때 진로를 정해 그걸로 평생을 먹고살아야 한다면 너무 어린 나이 아니냐. 두세 가지 진로를 탐색하면서 적성에 맞는 걸 찾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공 구분 없이 학생들을 받으면 특정 과목에 수백 명이 한꺼번에 수강 신청을 할 수 있다. 정 총장은 학생들이 과목 선택과 전공 변경 등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맞춤형 통합 정보 제공 시스템인 ‘스마트 멘토(가칭)’를 구축 중이다. 학생 개인의 자료를 분석해 전공별로 무슨 과목을 수강하면 되는지, 어떤 걸 전공하면 ‘졸업 후 진로’에 도움이 될지 등 체계적 로드맵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정 총장은 “학생들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지는 것이고, 학과 입장에선 학생 한 명 한 명을 ‘고객’으로 끌어당겨야 생존 가능한 무한 경쟁 체제로 나아가는 셈”이라며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학과 간 연계와 구조조정까지 유도할 계획”이라고 했다. 전공을 자주 바꿔도 4년 안에 졸업할 수 있도록 계절학기 확대 등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일반 전공으로 입학한 신입생과 기존 학생에게도 전공 선택 기회를 넓혀 주기 위해서 ‘오메가 스쿨’이라는 교육 시스템도 도입했다. 전공을 한번 정한 학생들도 오메가 스쿨에 등록해 3가지 트랙 중 하나(27학점 이상)를 이수하고 오메가 학기를 수료하면 전공을 바꿀 기회를 얻는다. 트랙은 창업, 글로벌 인턴십, 체험형 프로젝트로 이뤄져 있다. 정 총장은 “책상에 가만히 앉아 남이 떠다 주는 정보를 받아먹기만 해서는 새 시대가 원하는 인재가 될 수 없다”며 “학생들이 혁신적 아이디어와 창의적 사고를 기를 수 있도록 돕고,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도록 가르치는 게 우리 교육관”이라고 했다.
국민대는 폴크스바겐그룹코리아와 함께 자동차의 디지털화를 주도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씨미(SEA:ME) 프로그램을 지난해부터 운영 중이다. 국민대는 1992년 국내 최초로 자동차공학과를 신설하는 등 자동차를 특성화 분야로 선정해 꾸준히 투자해 왔다. 씨미 프로그램으로 매년 학생 10명을 1년간 독일 볼프스부르크 캠퍼스로 파견해 자율주행 시스템 등 실무 역량을 쌓도록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도 글로벌 캠퍼스를 구축해 지난 1학기부터 네 분야(소프트웨어 개발, 데이터 사이언스, 디자인, 미래 자동차) 3~4학년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구글·아마존 등 유수 기업에서 근무한 멘토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IT를 배우고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른다.
정 총장은 “국민대 교육 철학의 DNA는 ‘기업가 정신’”이라며 “설립자인 해공 신익희 선생의 애국정신과 후에 학교를 인수한 성곡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의 도전 정신이 녹아 있다”고 했다. 그는 “임기 중 성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10년, 15년 지속 가능한 기초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남은 임기 3년을 우리 대학의 골든타임이라고 여기고 국민대가 선도 대학 반열에 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