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정권에 영향 받지 않는 중장기 교육 정책을 세우고자 설립된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내부 갈등으로 파행을 거듭하다가 결국 최근 소속 전문위원회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내년 초 대학 입시 등 향후 10년의 중장기 발전 계획 발표를 앞두고 심각한 내홍에 빠진 것이다. 교육계에선 “여야 추천 인사들로 구성된 국교위가 정쟁(政爭)만 벌이다 사실상 제 기능을 못 하는 상태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국교위는 산하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전문위원회’를 해산하고 새로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국교위 측은 “전문위는 1년 6개월간 중장기 발전 계획 자문을 위해 교육 의제 발굴 및 논의를 해왔는데, 논의 과정에서 내홍으로 최근 위원 20명 중 18명이 사의를 표명해 전문위 개의가 어렵다”고 밝혔다.

이 전문위는 국교위 산하 세 전문위 가운데 핵심으로 꼽힌다. 국교위 설립 취지인 중장기 교육 발전 계획을 논의하고 각종 관련 의제를 도출해 국교위에 보고하는 역할을 맡았다. 국교위는 전문위 보고를 토대로 중장기 교육 발전 계획 최종안을 만들어 내년 3월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4개월을 앞두고 보수·진보 성향 위원들끼리 갈등하며 서로 비난하는 기자회견까지 여는 등 파국을 맞았다.

교육계는 “저런 국교위가 제대로 된 중장기 교육 계획을 만들 수 있느냐”는 의문이 크다. 국교위는 2022년 9월 출범 후 지금까지 국고 200억원을 썼다. 내년에도 106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국교위 내부에서도 “‘200억짜리 맹탕 보고서’라는 얘기를 들을까 봐 걱정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이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8차 국가교육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교육위원회 산하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전문위원회의 갈등은 지난 8월 불거졌다. 한 보수 성향 위원이 발전 계획에 담을 ‘수능 이원화’ 등 방안을 “전문위원장과 이미 조율했다”며 전문위 내부 단체 채팅방에 실수로 올렸다. 이에 진보 성향 위원 등이 반발해, 채팅방 내용을 비롯해 비공개하기로 한 각종 논의 사항을 언론에 유출했다. ‘수능을 두 번 치르자’ ‘내신을 외부 평가 기관에 맡기자’ ‘고교 내신 전면 절대평가제’ 등 하나하나 파급력이 큰 정책이 검토 중이라고 언론에 보도됐다. 이에 학부모·학생들은 혼란스러워했고, 국교위 내부에선 유출자를 찾으면서 진보·보수 간 갈등이 깊어졌다.

결국 지난 9월 전문위원 21명 중에 진보 성향 위원 8명은 회의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전문위가 사실상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자 보수 위원들까지 나서 총 18명이 사임했다.

이 전문위 갈등을 계기로 국교위 전체가 내홍에 휩싸였다. 지난 10월 정대화 국교위 상임위원 등 진보 위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년 국교위 실험은 ‘총체적 실패’로 중장기 교육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김태준 상임위원 등 보수 위원들이 ‘맞불 기자회견’을 열고 “근거 없는 정치 공격으로 국교위를 흔들고자 하는 의도”라고 했다.

교육계 인사들은 “국교위와 전문위 구성이 공개됐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국교위 위원은 대통령 지명 5명, 국회 추천 9명(여 3, 야 6),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등 기관 추천 3명, 교원 단체 추천 2명, 당연직 2명(교육부 차관, 시도 교육감 협의회장) 등 21명으로 구성된다. 현재 교원 단체 추천 2명이 정해지지 않아 보수 13명, 진보 6명 등 19명이다. 전문위 역시 정원 21명을 국교위의 보수·진보 비율에 맞춰 보수 13명, 진보 8명으로 구성했다.

현재 사임한 한 전문위원은 “전문성이 아니라 ‘정치 성향’을 1순위로 고려하다 보니 실제 전문위에 교육 전문가라고 부를 사람은 6명 정도밖에 없다”고 했다. 10년 중장기 교육 계획 기틀을 짜야 하는데 전문가가 너무 적다 보니 논의가 중구난방이었다는 것이다.

전문위원 21명은 모두 국교위에서 상근하지 않는 비상임 위원이다. 1년 넘게 논의한 방대한 내용을 정리해 국교위에 보고해야 하는데, 모두 비상임 위원이다 보니 전담할 이가 없어 애를 먹었다고 한다.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초안은 한국교육개발원 국가교육발전연구센터 소속 박사 인력 10명 안팎이 작성을 맡고 있다. 그런데 이 박사 인력들 역시 이 업무를 전담하는 것이 아니다. 작업 속도가 더디고, 좋은 결과를 내놓기 어려운 구조다.

또 다른 사임 전문위원은 “전문위원들이 사임한 데는 정치 싸움이 벌어진 탓도 크지만, 이 상태로 10년 국가 교육을 책임질 계획을 이름 걸고 낼 자신이 없었던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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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교위원 역시 정치색 강한 인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야권이 추천한 정대화 국교위 상임위원은 소셜미디어에 ‘윤석열 정권 퇴진’ 관련 여러 글과 사진을 게시해 한 시민 단체로부터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되기도 했다.

국교위가 지난 9월 출범 2주년 토론회를 열고 발표한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계획 주요 방향’ 역시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주요 방향은 내년 3월 최종 공개되는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계획’의 큰 방향이다. 그런데 ‘세심한 교육 복지’ ‘양질의 영유아 교육’ ‘대학 다양화’ 등 추상적인 내용만 나열돼 있어 토론 참가자가 “옛날 팝송 같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교육정치학자인 박대권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교육 정책은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이념적인 부분이 많은데, 국교위 보수·진보 합의가 안 되니 결국 문제 안 되는 뻔한 내용만 넣은 것”이라면서 “내년 3월 발표할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계획도 그간 교육계에서 나왔던 기존안들을 베껴 모은 수준의 맹탕 계획안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교위 관계자는 “12월에 새롭게 구성되는 전문위가 이전 전문위가 논의한 내용을 이어받아 신속하게 정리토록 할 계획”이라며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계획 발표가 일정에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국가교육위원회

10년 단위 중장기 국가 교육 발전 계획을 수립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바뀌는 혼란을 없애자는 취지로 설립된 대통령 직속 합의제 행정 기구다. 문재인 정부 국정 과제로 추진돼 2021년 관련 법이 통과됐고, 현 정부 첫해인 2022년 9월 출범했다. 내년 3월 첫 중장기 계획 발표를 앞두고 위원 간 갈등으로 담당 전문위원회가 사실상 해체되는 등 내홍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