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캠퍼스. 빨간색 줄무늬 옷을 입고 빨간 모자를 쓴 중년 남성이 커다란 빨간 주머니에서 ‘양말’을 꺼내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유명한 숨은그림찾기 책 주인공 ‘월리’로 분장한 사람은 입학처장 조윌렴 물리학과 교수. 이날 이대는 수시 최초 합격자 약 800명을 모아 학교 홍보 프로그램을 열었는데, 조 처장이 ‘깜짝 이벤트’로 학생들에게 기념품을 나눠준 것이다. 이대는 이날 4시간 동안 학교 소개부터 선배와의 만남 주선, 현악 7중주 공연 등을 열고 대학을 홍보했다. 이대 관계자는 “더 많은 우수 학생에게 캠퍼스의 매력을 알려줘서 우리 학교에 등록시키기 위해 매년 ‘수시 최초 합격자’ 행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가 아직 정식 등록도 안 한 ‘합격자’를 대상으로 이런 행사를 연 건 우수 학생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수험생들은 수시 모집에서 6곳에 지원할 수 있고, 여러 군데 합격해도 한 곳만 등록해야 한다. 최초 합격자들이 다른 대학에 가버리면 대학은 ‘추가 합격자’를 선발한다. 대학 입장에선 ‘최초 합격자’를 잡는 게 인재 확보에 중요해진 것이다. 올해는 계속되는 인구 감소 여파에다 의대 정원이 1500명 가까이 늘어나 상위권 대학들 사이 ‘우수 인재 확보 경쟁’이 더 치열해진 상황이다.
대학들은 지난 13일 수시 최초 합격자 발표를 끝냈고, 이들의 등록 마감 기한은 18일까지였다. 이들을 붙잡기 위해 그 사이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됐다.
◇2월 말고 12월 OT···‘21회 중 언제든 오세요’
‘예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 날짜를 앞당기는 게 대표적이다. 경희대는 ‘예비 대학’을 원래 2월에 열다가 작년부터 12월로 당겼다. 올해 수시 최초 합격자 발표 다음 날인 14일 바로 행사를 열었다. 이번 행사에선 “수험생들의 노고를 위로하겠다”며 각종 축하 공연과 특강을 진행했다. 태권도학과 재학생들이 ‘송판 격파’ 시범을 보였고, 경희대 ‘스타 교수’ 물리학과 김상욱 교수가 ‘알아두면 쓸데 있는 대학생활 잡학 사전’을 주제로 강연도 했다.
경희대 관계자는 “수시 최초 합격자 이탈을 막으려고 애교심을 심어주는 프로그램을 고안했다”면서 “대학 선택에 학부모들 의사도 중요하기 때문에 학부모도 많이 참석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14일 행사의 전체 참석자 850여 명 중 480명 정도가 학부모였다.
광주 조선대도 원래 1월에 열던 신입생 OT를 올해 12월로 당겼다. 수시 최초 등록 마지막 날이었던 18일부터 오는 20일까지다. 수시 합격생들에게 장학금, 어학연수 등 다양한 기회를 알리는 2시간짜리 프로그램인데, 사흘간 21회나 반복할 예정이다. 학생들이 편한 시간에 와서 언제든지 OT를 들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행사엔 관심 있는 고등학교 1·2학년생도 갈 수 있다.
◇‘최초합’에겐 장학금에 기숙사 혜택까지
‘수시 최초 합격자’가 실제 입학하면 장학금을 주는 대학들도 늘고 있다. 한양대는 학생부 종합 전형 최초 합격자가 입학하면 4년 전액 장학금을 주는 학과를 기존 7개에서 올해부터 15개로 두 배 이상으로 늘렸다. 이 밖에도 수시 최초 합격자들에게 100만원 이상 일시금 장학금을 주거나, 기숙사 선발 등 혜택을 주는 대학도 늘고 있다.
최초 합격자를 붙잡기 어려운 건 최상위권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작년 연세대·고려대·서강대·한양대에서 대기업 입사 혜택을 주는 ‘대기업 계약학과’들의 수시 최초 합격자 215명 가운데 등록 포기자가 199명에 달했다. 이들은 계약학과 대신 서울대나 다른 대학 메디컬 계열(의대·약대 등)에 진학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올해는 의대가 1500명 가까이 증원된 영향이 타 학교, 학과로 연쇄적으로 이어져 ‘똑똑한 학생 구하기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대학들의 절박함도 커졌다”고 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중위권 대학의 경우에는 최초 합격자와 추가 합격자의 수능 등급이 2~3등급까지 벌어진다”며 “대학들이 이제 가만히 앉아서 좋은 학생이 오길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