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대입 수시 미충원 인원 정시 이월 결정을 앞두고 의료계와 정부가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 23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의 모습. /연합뉴스

2025학년도 수시 최종 합격자 등록이 3일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가 먼저’라고 주장하던 의료계에서도 올해 입시는 건드리지 말고 2026학년도 이후를 논의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전히 교착 상태인 의정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의료계도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출구 전략’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오주환 서울대 의대 교수는 24일 더불어민주당 보건의료특별위원회가 개최한 ‘의학 교육 정상화 토론회’에서 이제 실현 가능한 대책을 의료계와 정치권이 협의하자고 제안했다. 오 교수는 “2025학년도 모집 인원 조정은 이제 사회적으로 실기(失期)한 주장이 됐다”며 “국민적 관점에서 모두의 피해를 최소화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오 교수는 정부가 2000명을 증원하기로 한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기존 정원(3113명) 이하로 조정할 수 있도록 논의를 시작하자고 했다. 그는 “의학 교육계는 교육 인프라를 확충하지 않은 현 상황에서 정상 교육이 가능한 의대 증원 규모를 300~400명으로 보는데 1497명이 증원됐다”며 “2026학년도 증원은 철회돼야 한다”고 했다. 오 교수는 “24·25·26학번 의대생이 교육에서 피해를 받는 것은 확실하므로 이 피해를 어떻게 분산할지 빨리 논의해야 한다”며 “교육부는 책임지고 내년 2월 입시 절차가 끝나기 전 대책을 수립해 발표해야 한다”고 했다.

오 교수는 2026학년도 의대 증원은 중단하지만 2027학년도부터는 증원 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맞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 등 연구팀이 발표한 ‘미래 의사 수 추계’를 근거로 들었다. 연구에 따르면 2036년까지 의료 인력이 초과 공급되다 이듬해부터 공급 부족이 시작된다. 오 교수는 “의료 인력 양성 기간 10년(의대 6년·전공의 4년)을 고려하면 2027학년도에 의대 증원이 시작됐어야 했는데 정부가 성급하게 과도한 규모로 증원을 결정했다”며 “이번에 증원된 1497명을 고려해 2027학년도 의대 정원 조정도 같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의료계는 2025학년도 의대 모집 인원부터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지금껏 고수했다. 그러나 수시 일정이 마무리돼 가며 오 교수처럼 현실적인 출구 전략을 내놓자는 얘기가 고개를 드는 상황이다. 지난 21일 의협회관에서 열린 의협 회장 후보자 토론회에서 ‘2025학년도 정원은 그대로 유지하고 2026학년도 정원을 이번에 증원된 만큼 줄일 경우 받아들이겠느냐’는 질의에 이동욱·최안나 후보가 찬성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최 후보는 “앞으로 의료계와 나아갈 길을 논의하는 자세로 정부가 사과하고 입장을 바꾸면 논의할 수 있다”며 “2026학년도 정원은 내년 5월 전에 결정돼야 해 시간이 없다. 의료 정상화와 의대 교육 파탄을 막을 방법으로 바로 협의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2025학년도 의대 모집 인원부터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그래야 내년 전공의와 의대생이 복귀할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최석진 인제대 의대 학장은 전날 의대생들과 간담회를 갖고 ‘내년에는 복귀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이 조정되지 않는 현실에서는 복귀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고 한다. 내년에도 휴학계를 낼 테니 수리해달라는 것이다. 최 학장은 “어떤 대안을 내놓든 전공의와 학생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이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수시 미충원 인원 ‘정시 이월 제한’이 어렵다면, 정시 모집 인원이라도 줄이자고 주장한다. 정시 모집에서 각 의대가 보통 3배수를 선발하는 정시 1차 서류 합격자를 1.5~2배만 발표하고 추가 모집을 중단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이번에 의대 정원이 대폭 늘어난 지역 대학을 위주로 전체 정원이 수백 명 정도는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원이 기존 49명에서 이번에 125명으로 늘어난 충북대 의대 채희복 교수는 “의대 정원이 늘지 않고 기존에 인프라가 탄탄한 서울 지역 의대는 내년 어떻게든 교육이 가능하겠지만 지역 대학은 사정이 다르다”며 “소규모 의대였던 우리가 이 혼란한 상황에서 내년에 갑자기 174명을 제대로 교육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