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대현초등학교는 주차장에 임시 사무실을 만들고 있다. 3월 신학기에 교장실, 교무실, 행정실을 임시 사무실로 옮기고, 그 자리에 교실 4개를 만들려는 것이다. 최근 이 학교는 학생 수가 크게 늘어 교실이 부족하다. 작년에 학생 275명이 늘어 4학급을 늘렸는데, 올해도 학생이 늘어날 예정이라 네 교실을 더 만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학급 수는 1·2학년 각 넷, 3·4학년은 각 여섯, 5학년 일곱, 6학년 아홉으로 고학년일수록 많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인근 중학교에 진학하려고 고학년 때 전학 오는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저출산 현상으로 전국적으로 학생이 급감하는 가운데, 서울 강남구는 지난해 학생 수가 기록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계에선 “젊은 부모들 사이에서 ‘조금 무리하더라도 일찍 강남으로 가자’는 분위기가 점점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 통계 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강남구의 초·중·고 학생은 6만1206명으로 전년보다 2098명(3.6%) 증가했다. 전국 학생 수는 2023년 약 521만명에서 지난해 513만명으로 8만명(1.5%)가량 줄었는데, 강남은 오히려 급증한 것이다. 그 결과 지난해 강남구는 서울 25자치구 가운데 송파구를 제치고 학생 수 1위가 됐다. 지난해 학급 수가 늘어난 곳도 서울 25구 중 강남구(66학급)가 유일했다.

강남의 학생 증가는 전국적으로 봐도 두드러진다. 작년 기초자치단체 229곳 중에서 학생 수가 늘어난 곳은 33곳밖에 없는데, 이 중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이 인천 서구(2568명)고, 강남구(2098명)가 2위다. 인천 서구는 검단, 청라 신도시 개발로 최근 젊은 부부가 많이 전입해 학생 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래픽=김하경

강남 학생이 지난해 급증한 것은 대치동, 개포동의 재건축 정비 사업이 마무리돼 대단지 아파트 입주 증가의 영향이 크다. 이와 함께 젊은 부모 사이에서 ‘자녀 교육은 강남에 가서 해야 한다’는 ‘강남 불패’ 심리가 강해진 것도 영향을 끼쳤다고 교육계는 보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수년 사이 준공된 아파트만으론 지난해 이례적인 증가를 다 설명할 수 없다”며 “최근 교육 제도 변화와 지난해 의대 증원으로 불이 붙은 ‘의대 열풍’ 때문에 부모들이 교육 인프라가 월등한 강남구로 하루빨리 가야겠다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고교 내신 5등급제’와 ‘정시 확대’ 등 제도 변화가 강남 지역 학교에 유리하다는 인식을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올해 고등학교 1학년부터 고교 내신 제도가 ‘9등급 상대평가’에서 ‘5등급 상대평가’로 바뀌는데, 이러면 내신 경쟁이 치열한 고교 학생들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9등급에서 5등급제가 되면 1등급을 받는 학생이 상위 4%에서 10%로 늘어난다. 문재인 정부 때 서울 주요 대학들의 정시 전형 비율을 40%까지 확대하도록 한 것도 내신 성적이 중요한 ‘수시’보다 수능 성적이 중요한 ‘정시’에 강한 강남 지역 고교들 인기를 높였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의대 2000명 증원’ 정책도 작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의대에 가려면 사교육이 발달한 강남 대치동에 가서 일찍부터 선행 학습을 해야 한다는 심리에 불을 지폈다는 것이다. 남윤곤 메가스터디 입시전략소장은 “이왕 일찍 사교육을 받게 하려면 조금 무리하더라도 서초구 등이 아니라 아예 강남구로 가려고 마음먹는 젊은 부부가 늘어났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강남구에 늘어난 학생 2098명 가운데는 초등학생(1034명)과 중학생(702명)이 대부분(83%)이었다.

강남 인기가 높아지면서 과밀 학급 문제까지 생겼다. 서울 중학교 학급당 학생은 평균 24.9명인데, 강남 대청중(학생 1086명)은 33.9명, 역삼중(1185명)은 32명에 이른다. 지난해 강남구 전체 학급(2386)은 전년보다 66학급 늘었지만, 학교 공간 부족 등으로 계속 늘리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교사들은 학생 수가 많아 업무 부담이 크다며 강남 지역을 기피하고 있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작년 신규 초등 교사의 약 40%를 강남서초교육지원청으로 발령 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강남과 비강남 구도가 뚜렷해지는 현상은 가정 형편에 따른 교육 격차를 벌릴 우려가 있는 만큼 이런 상황을 계속 방치해선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