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쇄살인사건’(1986~1991년) 10건을 비롯해 모두 14건의 미제 살인사건을 저지른 이춘재(57)가 마침내 법정에 선다. 이춘재는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지금까지 부산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이춘재는 지난해 이들 사건의 진범이 자신이라고 자백하면서 신상이 공개됐다. 또 일부 언론을 통해 최근의 얼굴 모습이 알려지기도 했으나, 공개된 자리에 직접 등장한 적은 없었다.

이춘재가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한 화성 8차 사건의 재심을 맡고 있는 수원지법 형사12부(박정제 부장판사)는 7일 오전 열린 5차 공판에서 “재심 재판 마지막 증인으로 이춘재를 소환해 심문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춘재는 이 사건을 저지른 지 32년만에 법정에 서게 됐다.

8차 사건 재수사를 한 경찰과 검찰에 따르면 이춘재는 조사 과정에서 재심을 신청한 윤성여(53)씨에 대해 미안함을 표시하면서 법정에 출석해 자신이 진범이라고 진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이춘재의 법정 출석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춘재가 저지른 살인사건은 모두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피고인이 아닌 증인 자격으로 법정에 서게 된다.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뒤 재심을 청구한 윤성여(53)씨가 7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5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윤씨의 재심 사건에서 윤씨측은 물론 검찰도 이춘재의 증인 채택을 요구했으나 그동안 법원은 결정을 미루어왔다. 그러나 8차 사건의 진범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기대됐던 증거인 당시 범행현장에서 수거한 체모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감정 불가’ 판정이 내려지면서 이춘재를 직접 부르게 됐다.

재판부는 이날 “지난달 11일 현장 체모 2점에 대한 감정 결과가 국과수로부터 도착했다. 그러나 해당 체모는 테이프로 인한 오염과 30년 이상 보관된 시간으로 인해 DNA가 손상되거나 소실됐고, 모발이 미량이어서 DNA가 부족해 ‘판단 보류’(감정 불가) 결과가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객관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은 이상 이춘재를 증인으로 채택, 재심 재판 마지막 증인으로 소환해 신문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화성사건 재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국과수가 2017∼2018년쯤 국가기록원에 이관한 8차 사건 감정 관련 기록물에서 테이프로 붙여진 사건 현장 체모 2점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지난 5월 이들 체모에 대한 압수영장을 발부했고, 검찰은 곧바로 영장을 집행해 체모를 확보했다.

국과수는 지난 6월 감정 작업에 착수, 현장 체모 2점과 재심 피고인 윤씨의 DNA, 그리고 대검이 보관하고 있던 이춘재의 DNA 데이터베이스를 비교 분석한 결과 지난달 ‘감정 불가’ 판정을 내렸다.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당시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모씨 집에서 13세 딸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듬해 범인으로 검거된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상소하면서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2심과 3심 재판부는 모두 기각했다.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이춘재가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하자 작년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