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남동 최고급 아파트에서 대리운전 기사가 1억원대 테슬라 전기차를 몰고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다가 급속도로 벽면에 충돌한 뒤 그대로 차량이 불길에 휩싸였다. 이 사고로 차주(車主)인 국내 4위권의 대형 로펌 변호사가 숨지고, 대리운전 기사와 불을 끄려던 아파트 경비원 등 2명이 다쳤다. 운전자는 경찰에 “갑자기 차량 통제가 안 되며 급가속됐다”는 취지로 말했다. 경찰은 사고 원인이 차체 결함인지, 운전자의 과실인지 따져보기 위해 이 차량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다.
◇충돌 직후 화염, 1시간 타올라
9일 밤 9시 43분쯤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윤모(60)씨의 테슬라 모델X 롱레인지 승용차가 한남동 윤씨 아파트 단지 보안 게이트를 통과해 지하 주차장 진입로로 들어섰다. 진입로는 약 70m 직선으로 이어지다 벽과 만나는 지점에서 좌우로 갈라지는 구조다.
윤씨 차량은 갑자기 속도를 높이면서 운전석 쪽으로 45도 각도로 비스듬하게 정면 벽과 충돌했다. 그 직후 차량 앞부분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테슬라는 배터리로 구동하는 전기차이다. 소방 당국은 충돌로 배터리에 충격이 가해지며 화재가 난 것으로 추정한다. 불은 1시간 5분 동안 타올랐다. 목격자는 “진화 과정에서 꺼지는가 싶으면 다시 타오르길 반복했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는 “일반 휘발유 차량이 이런 충돌에서 불이 나는 경우는 드물고, 나더라도 30분 정도면 꺼졌을 것”이라며 “전기차는 배터리가 밀폐된 바닥 전체에 촘촘하게 깔려있기 때문에 한번 불이 나면 외부에서 소화액이나 물을 뿌리는 방식으로는 잡기 어렵다”고 했다.
◇전자식 도어, 방전돼 외부서 못 열어
사고 직후 대리기사 최모(59)씨는 빠져나와 주차장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사이 아파트 방재실 직원이 충돌 소리를 듣고 내려왔다. 직원은 조수석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차주 윤씨를 발견하고 조수석 문을 열려고 했으나 열리지 않았다.
사고 6분 만에 소방차가 도착했지만 소방관들도 조수석 문을 열지 못했다. 사고 차량은 외부에 문을 여는 손잡이가 없다. 일반 차량의 손잡이가 있는 지점을 누르면 전자식으로 열린다. 내부에선 일반 자동차처럼 레버로 열 수 있지만, 외부에선 전력 공급이 끊기면 문을 못 연다.
소방관들은 문을 못 열고 결국 뒤쪽 트렁크를 따고 윤씨를 끄집어냈다. 사고가 난 지 25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윤씨는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미국에서도 작년 2월 테슬라 ‘모델S’ 차량이 나무와 부딪힌 후 화염에 휩싸였지만, 외부에서 문을 열지 못해 탑승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윤씨 사망 원인은 연기 흡입 때문인지 충격 때문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대리기사 최씨는 충격으로 가슴과 배를 다쳤고, 불을 끄려던 아파트 직원 김모(43)씨는 연기를 흡입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해외서도 급발진 논란
경찰은 운전자 최씨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지만, 사고 원인이 차량 오작동인지 운전자 과실인지를 정확히 판단하고자 사고 차량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다.
테슬라는 미국에서도 급발진으로 논란을 빚고 있다.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따르면, 테슬라 운전자의 ‘급발진’ 민원은 127건. 충돌 사고가 110건 일어났고, 52명이 다쳤다. 올해 1월 NHTSA까지 관련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테슬라는 급발진 의혹을 전면 부인한다. 테슬라는 NHTSA 조사에 대해 “급발진 의혹은 테슬라 주식을 전문적으로 공매도하는 쇼트 셀러(Short-Seller) 세력들에서 제기된 것”이라며 “급발진을 주장한 모든 사고를 조사했지만, 차량에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국내 테슬라 차량 판매량은 최근 급증세다. 테슬라가 국내에서 판매를 개시한 2017년 이후 올해 11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1만4923대다. 이 중 77.7%(1만1601대)가 올해 들어 판매됐다. 윤씨 차량 가격은 1억160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