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다음 날인 26일, 노동·시민단체들이 서울 도심에서 차량 100여대를 동원해 시위를 벌였다. 경찰과 서울시는 코로나 확산 상황을 감안해 집회를 금지했지만 주최 측은 시위를 강행했다. 시위대 일부는 청와대 근처까지 접근했다. 경찰은 지난 10월 보수 단체의 개천절 차량 시위를 앞두고는 원천 봉쇄 방침을 밝히며 “면허를 취소하겠다”고까지 엄포를 놨지만, 당시보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상황이 훨씬 심각한 이번엔 지시를 따르기만 하면 차량을 통과시켰다.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역 부근 도로에서 중대재해법 입법과 비정규직 해고 금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복직 등을 요구하는 차량시위가 경찰에 가로막혀 있다. '비정규직이제그만' 등 노동·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생명을 살리고 해고를 멈추는 240 희망차량행진 준비위원회'는 경찰의 집회 금지통고에도 불구하고 행진을 강행했다. 이 단체는 여의도 전경련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경련 앞에서 출발하는 행진은 취소하지만 서울 세 곳에서 행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2020.12.26/연합뉴스

26일 오후 2시 ‘비정규직 공동행동’ 등 노동·시민단체들은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를 향한 차량 행진을 시작했다. 주최 측은 240대로 행진하겠다고 신고했지만, 실제로는 100여대가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차량 집회는 경찰이 불허한 불법 집회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중대한 산업재해 발생 시 사업주의 형사 책임을 강하게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해고 금지, 민노총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했다. 참가자들은 “차량에서 내리지 않고, 3분씩 간격을 두고, 차량 간 100m씩 떨어지는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하겠다”며 차에 피켓·깃발을 달고 행진을 시작했다.

경찰은 도심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 곳곳에 검문소 12곳을 설치, 이들의 진입을 막았다. 시위대는 차량을 도로 위에 세운채 경적을 수십 초간 울리며 항의했다. 경찰은 “동일한 문구가 적힌 피켓, 깃발을 차량에 붙이고 단체로 이동하는 것은 명백한 집회”라며 “피켓 등을 떼어달라”고 안내했다. 이에 일부 시위대는 경찰 검문만 통과한 이후 피켓·깃발을 다시 부착하거나, 차창을 열어 손으로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깃발을 단 시위 차량 한 대는 청와대 인근인 서울 종로구 적선동 도로에서 경찰에 제지당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교통 체증이 빚어지자, 경찰은 이 차량을 견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도로 중간에서 도로가로 살짝 옮겨놓는 수준이었다. 경찰은 “이날 집회와 관련해 현행범으로 체포된 사람은 없었다”고 밝혔다.

최근 서울의 코로나 상황은 어느 때보다 심각하지만 경찰의 대응은 지난 10월 보수 단체의 차량 시위에 비해 느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경찰은 시위 불허는 물론, 경찰청장이 직접 나서 “참가자를 현행범 체포하고 운전면허 취소·정지에, 차량은 즉시 견인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시위 당일엔 광화문에 접근하는 차량을 멈춰 세워 방문 목적과 태극기 소지 여부 등을 확인했다. 개천절(10월 3일) 당일 코로나 확진자 수는 75명, 지난 26일 확진자는 그 15배인 1131명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채증 영상 분석 등 내사를 통해 필요한 부분은 추후 사법 처리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