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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에 40대 여성이 알고 지내던 50대 남성의 집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다급하게 112신고를 했으나, 휴대폰 위치 추적에 실패해 경찰이 주소를 파악하느라 약 50분을 허비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 여성은 흉기에 찔려 숨진 상태였다. 특히 신고를 접수한 112 상황실 직원이 위치 확인의 단서가 되는 중요한 정보를 빠뜨리고 상황을 전파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당시 신고 접수와 초동 대응 등에 문제가 없었는지 조사를 벌이고 있다.

24일 경기남부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17일 새벽 0시49분쯤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여성 A(49)씨가 112 신고를 했다. 약 42초간 이루어진 통화에서 A씨는 “알고 지내는 남자가 흉기를 들고 찌르려 한다”고 신고했다. 112 상황실 접수요원이 주소를 확인하려 했으나 “모르겠다”고 했다.

112 상황실 접수요원은 즉시 ‘코드 제로'를 발령하고 관할인 광명경찰서에 상황을 전파했다. 코드 제로는 납치, 감금,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가 의심될 경우 발령되는 경찰 업무 매뉴얼 중 위급사항 최고 단계로 해당 경찰서로 즉각 전파돼 현장 출동 등 업무 지원이 이뤄지게 된다.

이에 따라 광명경찰서는 순찰차 8대, 형사기동대 차량 1대 등을 동원하고 경찰관 21명이 출동해 신고자의 위치 파악에 나섰다. 또 112 상황실에서는 휴대폰이 가입한 통신사 기지국, 와이파이, GPS 등 3가지 방식을 동시에 활용해 신고자의 위치를 추적하는 시스템(LBS·위치 기반 시스템)을 가동했다.

그러나 경찰은 112 신고 약 50분이 지난 새벽 1시42분에야 신고자가 있던 다세대 주택을 찾아내 현장 진입에 성공했다. 이곳은 가해자인 남성 B(53)씨의 집이었다. 그러나 이미 신고자인 여성은 B씨에 의해 흉기로 온몸이 수십 군데 찔린 상태로 호흡과 맥박이 멈춰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출동한 경찰관들은 신고자의 위치를 찾는데 시간을 허비했다. LBS 3가지 방식 가운데 가장 정밀한 GPS 정보가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GPS 정보는 오차가 반경 몇 m 정도이지만 기지국은 수백 m~수 km, 와이파이도 수십 m나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시 출동한 경찰관들은 와이파이와 기지국 방식에 따른 정보를 근거로 무려 600여가구가 밀집한 지역을 대상으로 수색에 나섰다. 그러나 워낙 범위가 넓은데다 야간이어서 가가호호 방문 확인도 쉽지 않아 A씨의 소재 파악이 불가능했다.

특히 경찰이 신고자의 위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있었다. 신고자 수색에 진전이 없자 약 30분이 지난 새벽 1시27분쯤 경찰은 112 신고 녹음을 재차 확인했고, A씨가 가해자인 B씨의 이름을 언급한 것을 파악했다. 이를 근거로 B씨의 신원과 주소를 확인하고 체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찰이 새벽 1시42분쯤 B씨의 집을 찾아내 도착했을 당시에 이미 A씨는 B씨의 흉기에 찔려 숨진 상태였다. 두 사람은 2년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B씨는 A씨가 112 신고를 했을 당시 담배를 피우기 위해 집 밖에 나와있었다. 그러다 다른 남자와 통화하는 것으로 오해해 A씨의 휴대폰을 빼앗아 전원을 껐고, 말다툼을 하다 흉기로 마구 찔러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A씨의 GPS 정보가 왜 확인되지 않았는지는 조사하고 있으나, 전원이 꺼져 있거나 실내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112 상황실에서 GPS 위치추적을 강제 작동할 수 있으나 역시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가해자인 A씨가 112 신고를 한 직후 B씨가 휴대폰을 빼앗아 전원을 껐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현장 출동 당시 A 씨의 상태와 B 씨의 진술 등을 근거로 A 씨가 112 신고 전화를 한 직후 경찰이 출동해 수색에 나서기 전에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112 신고부터 현장 확인까지 시간이 지연된 사유에 대해 감찰을 진행하고 있다. A 씨의 유족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경찰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는 글을 올려 처벌과 사과를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