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 세 모녀’를 잔혹하게 살해한 김태현(25)이 살인 1주일 전부터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큰딸 A(25)씨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스토킹을 하다 살인을 결심했고, “필요하다면 가족들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고 경찰이 밝혔다. 경찰은 9일 김태현을 검찰에 넘기면서 이 같은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김태현은 검찰에 송치되기 전, 포토라인에서 무릎을 꿇고 “살아있다는 저 자신이 뻔뻔하단 생각이 든다. 사죄드린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태현과 피해자 A씨의 관계는 작년 한 온라인 게임에서 시작됐다. 주로 게임 채팅창에서 대화를 주고받다 작년 11월쯤 연락처를 교환하고 카카오톡, 전화까지 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지난 1월에는 두 차례 만났고, 서울 강북구의 한 PC방에서 함께 게임도 했지만 ‘연인 관계’는 아니었다. 지난 1월 23일, 평소 알고 지내던 게임 이용자 2명과 함께 넷이 저녁 식사를 하던 세 번째 만남에서 김과 A씨는 말다툼을 했다. A씨는 “더 이상 찾아오거나 연락하지 말라”고 했고, 이후 김의 연락도 받지 않았다. 그러자 김은 저녁 늦은 시각 A씨 집 주변에서 기다리고 공중전화, 지인의 휴대폰 등을 이용해 계속 연락을 시도했다. 김은 “게임을 할 때 (A씨와) 마음이 잘 맞았고, 내심 연인 관계로 발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며 “왜 내 연락과 만남을 거부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는 취지로 경찰에 진술했다.
김태현은 범행(지난달 23일) 일주일 전쯤 A씨를 살해하기로 결심하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온라인 게임에서 자신을 차단한 A씨에게 접근하기 위해 다른 게임 아이디로 대화를 시도해 범행 당일 A씨의 직장 근무 일정까지 파악했다. 또 스마트폰으로 ‘사람 빨리 죽이는 법’을 검색한 다음 범행 당일 A씨 집 근처 마트에서 범행 도구인 ‘과도’를 훔쳤다. 김은 퀵 서비스 기사를 가장해서 A씨 집에 침입, 당시 홀로 있던 A씨 여동생을 살해했다. 이어 귀가한 A씨 어머니와 A씨를 연달아 살해하고 사흘간 시신과 머물렀다.
김은 범행 이후, A씨의 스마트폰을 뒤져 증거 인멸을 시도하기도 했다. 두 사람을 함께 알고 있는 지인들과 A씨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살펴보고 이들을 수신 차단했다. 이어 소셜미디어의 친구 목록에서도 삭제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김은 ‘이후 자해를 시도하다 의식을 잃었고, 의식이 돌아오면 다시 자해를 시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맥주 등 음료를 꺼내 마셨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김은 지난달 25일 ‘A씨와 연락이 안 된다’는 지인들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은 “A씨와 만남이나 연락 자체를 거부당해 화가 나고 배신감을 느껴 살해했다”며 “A씨를 살해하는 데 필요하다면 가족들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김의 범행이 우발적이 아니라 고의적이고, 자신도 범행 후 ‘극단적 선택’을 할 결심을 하고 범행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의 범죄 심리를 분석한 프로파일러들은 그가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9일 김태현을 살인, 절도, 주거침입, 지속적 괴롭힘, 정보통신망 침해 등 5개 혐의로 서울 북부지검에 송치했다. 이날 포토라인에 선 김태현은 “피해 유가족에게 할 말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무릎을 꿇고 “뻔뻔하게 눈 뜨고 있는 것도 숨을 쉬고 있는 것도 죄책감이 많이 든다. 살아있다는 것도 정말 저 자신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유가족분들과 저로 인해서 피해입은 모든 분들께 사죄 말씀 드린다”고 했다. 취재진 요청에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어 얼굴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은 이날 서울 동부구치소에 수감됐다. 검찰은 “피의자를 철저히 수사하고, 유족에겐 긴급 장례비 1200만원을 지원하는 등 피해자 지원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