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정다운

70대 아버지가 조현병을 앓고 있는 40대 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수사 과정에서 부친은 “조현병을 앓는 딸이 손주 앞날을 망칠까 두려워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A(78)씨는 지난 4월 20일 경북 포항의 자택에서 함께 지내던 딸을 살해했다. A씨는 딸 B씨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뒤 미리 준비한 마대 자루에 딸의 시신을 담았다. 이후 아내와 함께 시신을 자택 인근 야산에 유기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미리 구덩이까지 파뒀지만 노부부가 시신을 옮기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장례지도사(장의사)를 불러 “자고 일어나니 딸이 죽었다”며 매장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장례지도사는 “경찰에 신고부터 하라”고 했다. 장례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선 사망진단서가 필요하며, 특히 변사의 경우 진단서를 발급하려면 경찰의 조사를 통한 사인(死因) 규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장례지도사의 안내를 들은 노부부는 이튿날 오전 8시쯤 경찰에 사망 신고를 했다. 이 당시에도 A씨 부부는 “자고 일어나니 딸이 죽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시신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목이 졸린 흔적을 발견한 뒤 타살 가능성을 의심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해, B씨의 사인이 질식사라는 통보를 받았다. 경찰이 이를 토대로 추궁하자 A씨는 범행을 시인했다. 그는 “나와 아내가 먼저 죽으면 조현병 증세가 악화 중인 딸이 손주에게 해를 끼칠 것 같았다”면서 “손주의 앞날이 걱정돼 (딸을) 살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딸은 2013년 조현병 진단을 받았고 약 5년 전부터 친정에서 부모와 함께 산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A씨를 비속 살해 등 혐의로 기소했다.

일각에선 A씨가 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 어려워 범행을 저지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017년 조현병 환자의 입원과 관련한 정신보건복지법이 개정돼 환자 본인의 동의 여부가 중요해지면서 인권 문제 등으로 강제입원이 한층 까다로워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