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태업과 업무 방해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8월 30일 세상을 떠난 C사 택배 대리점주 이모(40)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그는 15년 전부터 택배 기사로 일하다 인정받아 8년 전 경기도 김포시에 택배 대리점을 차렸다. 이씨 대리점엔 택배 기사 18명이 함께 일했다. 처음엔 기사들과 가족처럼 지냈다고 한다. 회식도 자주 했다. 그런데 지난 5월 대리점에 민주노총 택배 노조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주변 사람들은 당시만 해도 이씨가 “노조가 있다고 나쁜 게 아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요구하면서 고쳐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노조가 택배 수수료를 올려달라고 요구하면서 무거운 생수나 부피가 큰 휴지처럼 배달하기 까다로운 물건들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본사를 상대로 벌이는 투쟁에 이씨를 희생양 삼은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보낸 택배 물량이 방치된 채 쌓였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기사들과 함께 남은 물량을 나눠 맡으며 하루하루 버텼다. 야간이나 주말을 활용해 직접 배달에 나선 날도 많았다.
그러자 노조 기사들이 채팅창에 욕설을 쏟아냈다. “X 싸놓으신 것 처리하세요” “나이 쳐 드셔가지고 줏대 없이 욕 쳐 드셔 좋겠습니다”…. 이들은 비노조 기사에게 “비리 소장보다 더 X 같은 XX 나와. 널 X 죽이고 싶을 만큼 집앞이야. 쳐 나와봐”라고까지 했다.
태업에 폭언까지 겹치자 이씨는 괴로워했다. 대리점 운영에 직접 배달까지 하느라 목과 어깨를 다쳤고, 정신적 스트레스로 혈관에 문제가 생겼다. 병원에선 수술을 권했지만 “대리점 일은 어떻게 하느냐”면서 퇴원했다. 그는 유서에 “처음엔 버텨보려 했지만 집단 괴롭힘과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태업에 버틸 수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됐다. 너희들(노조원)로 인해 죽음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 있었단 걸 잊지 말라”고 적었다.
8월 30일 오전 이씨는 김포시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에 살던 집이었다. 이씨 동생은 “그 아파트 살 때가 행복하고 좋았다는 말을 (형이) 자주 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편지에 노조 기사들 12명 이름을 하나하나 적었다. “(당신들이) 원하는 결말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노조 지회장 등을 거명하면서 “여러 사람 선동해 한 사람에 대한 괴롭힘을 멈춰주셨음 좋겠다”고도 했다.
빈소에서 만난 이씨 아내 박모(40)씨는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 사항이 많았지만 그래도 남편이 다 들어보려고 하고 성실히 다 대답해줬는데, 노조원들이 온갖 욕설과 폭언, 협박을 쏟아냈다”면서 “이런 상황이 계속되고 나중엔 (남편이) 답변을 잘 안 하자 노조원들은 이걸 갖고 ‘XX 벙어리냐’면서 조롱했다”고 말했다. 이씨와 가까운 한 대리점주는 “이씨가 한 달 전쯤 전화로 ‘다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씨는 유서에서 아이들에게 “너희 때문에 여기까지 버텨왔는데 아빠가 너무 힘들어. 이기적인 결정 너무도 미안하다. 학교 입학식, 졸업식, 남자친구, 여자친구, 군대, 시집, 장가 옆에서 함께 지켜보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아빠는 마지막까지 부족하구나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C사택배대리점연합은 31일 보도 자료를 내고 “택배 노조의 불법 파업과 집단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세 아이의 아버지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밝혔다. 이날도 이씨 대리점에는 택배 노조가 배송을 거부한 물품 수십 개가 남아 있었다. 해당 노조 관계자는 “지금은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택배노조 본부는 이날 입장 자료를 내고 “상중이니 진위를 다투는 문제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겠다”면서도 “원청이 책임을 대리점에 전가하며 을(대리점)과 을(택배기사)의 싸움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안타까운 일이 생겼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