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한 택배업체 터미널 인근 도로에 40대 택배대리점주 A씨를 추모하는 택배차량이 줄지어 정차돼 있다. A씨는 노조를 원망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지난달 30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연합뉴스

택배 대리점주 이모(40)씨가 민노총 택배노조 조합원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고통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사건과 관련, 택배노조가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 괴롭힘’의 ‘일부’를 사실로 인정했다. 그러나 노조는 경찰 조사가 시작도 되지 않았음에도 처벌 가능성이 큰 주요 불법 행위 의혹에 대해서는 “위반하지 않았다는 판단” “개선요청을 한 것” 등으로 미리 선을 그었다. 무거운 택배를 ‘똥짐’이라 부르며 배달을 거부하고, 이를 직접 배달한 점주 이씨와 그의 동료를 조롱한 행위는 ‘개선요청’이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노조는 이씨가 유서에 극단 선택의 이유를 분명히 남겼음에도, “고인이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씨가 여기저기서 돈을 빌렸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적반하장’ ‘2차 가해’라는 비판이 나왔다.

◇불법 또는 비난 소지 큰 행위는 부인·정당화

김태완 민노총 전국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이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에서 택배대리점 소장 사망에 대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택배노조는 2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5월부터 4개월여 동안 단체 대화방에서 나온 대화를 조사했다”며 “조합원들의 일부가 고인에게 인간적 모멸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의 글들을 단체 대화방에 게재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이씨를 도와 이른바 ‘똥짐’을 배달한 비조합원 택배 기사에 대한 노조원 괴롭힘에 대해서도 “폭언과 욕설 등의 내용이 확인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징계위에 회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했다. 또 “욕설과 비방 등의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강력 조치할 예정”이라고 했다.

기자 회견 중 ‘사과’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은 딱 여기까지였다. 이어 노조는 “이러한 행위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지는 않았다는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회견에서 노조는 조합원들이 무거운 택배를 방치한 행위를 ‘개선요청’이라고 불렀다. 그런 행위가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근거로 내세운 것이 “대리점들이 고소하여 검찰·법원 판단을 구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지연배송에 대해서는 “불법파업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했다.

택배노조는 숨진 이씨에게 빚이 많았다는 주장을 폈다. “조합원 한명이 대출을 받아 (이씨에게) 3억원을 빌려줬다” “한 조합원은 어머니로부터 돈을 빌려 이씨에게 1억원을 빌려줬다” “(이씨가) 다른 사업도 추진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여러 이유로 현재 살고 있던 집까지 매각했다” 등이었다. 이어 “고인이 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됐는지와 관련해 여러 곳에서 제보가 들어오고 있으나 고인의 명예를 위해 개인적 사유는 보고서에서 제외했다”고 했다.

2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한 택배업체 터미널에 마련된 택배대리점주 A씨의 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노제를 지내며 마지막 배웅을 하고 있다. A씨는 노조를 원망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지난달 30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남강호 기자

◇유족 “노조 회견, 패륜적 행위… 법적 책임 물을 것”

이씨의 유족은 택배노조의 기자회견 직후 대리점연합회를 통해 발표한 입장문에서 “노조의 기자회견은 고인의 죽음을 모욕하는 패륜적 행위”라며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앞세워 고인의 마지막 목소리마저 부정하는 파렴치한 태도를 보여줬다”고 했다. 이어 “용서할 수 없는 행위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씨 빈소에 조화를 보냈던 한 택배 대리점주는 “항변할 수도 없는 망자를 거대 권력이 발표라는 형식을 통해인격적으로 매도함으로써 사건의 본질을 흐렸던 서해 공무원 사건이 생각난다”며 “2차 가해 아니냐”고 했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스스로 조사를 했답시고 폭력처벌법 위반은 아니라고 발표하는 것은, 친민노총 정권 하 경찰을 상대로 가이드라인을 준 것 아니냐는 의심도 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