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자 등에게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엄태항(73)봉화군수에게 징역형이 선고됐다.
9일 대구지법 형사 11부(재판장 이상오)는 엄 군수의 뇌물수수죄에 대해 징역 1년과 벌금 2000만원을 선고하고, 직권남용죄에 대해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태양광 공사 수주와 관련해 9억여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혐의 등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엄 군수는 지난 2018년 관급자재 납품업체 선정 과정에서 기존 납품업자 대신 평소 친분이 있던 A씨와 공급 계약을 체결하도록 군청 공무원들에게 강요하고, A씨에게 관급 공사 수주에 대한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태양광발전소 공사 대금 9억 3000여만원을 돌려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별도로 쓰레기 수거 위탁 계약업자와 건설업체 대표에게도 각각 500만원과 1000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엄 군수는 수액이 달린 휠체어를 탄 채로 재판정에 들어섰다. 지난해 12월 교통사고로 다리 골절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검찰은 엄 군수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엄군수가 쓰레기 수거업자에게 받은 500만원과 건설업체 대표에게서 건네받은 1000만원이 모두 대가성이 있는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엄 군수 측은 “쓰레기 수거업자와의 오랜 친분으로 50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쓰레기 수거업자 측이 봉화군과의 계약 해지를 앞두고 있었던 점, 이를 엄 군수가 알고 있었던 점 등을 감안해 계약 연장을 위한 대가성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또한 건설업자로부터 받은 1000만원 역시 재판부는 “엄 군수가 이 돈을 압수 수색 전까지 약 한 달 간 반환하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던 점, 건설공사 수주 등 대가성이 인정되는 점 등을 감안해 뇌물을 수령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엄 군수가 평소 친분이 있던 건설업자 A씨와 관급공사 계약을 체결하도록 담당 공무원을 압박한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 판결을 내렸다. 반면 엄 군수와 태양광 건설업자 A씨간에 오갔던 9억 3000만원에 대해선 무죄 판결을 내렸다. 해당 금액이 별도의 대가성이 없다고 본 것이다.
앞서 검찰은 A씨가 이미 봉화군 측에서 지급한 2억 8000여만원을 엄 군수의 차명 계좌로 보낸 뒤, 미지급된 6억 4000여만원의 지급을 면제해준 사실을 토대로 엄 군수가 총 9억 3000여만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했다고 판단해 기소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엄 군수와 A씨는 기존에도 공사를 진행한 바 있고, 중간에 정산을 하거나 추후에 정산을 하자는 얘기가 오갈 만큼 친분 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변호인 측이 재판 과정에서 제시한 (정산)증거를 봐도 설득력이 있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엄 군수와 A씨 사이에서 오간 2억 8000여만원 등은 중간 정산으로 보기에 정당한 금액이며, 별도의 대가성이 드러나진 않는다”고 했다.
이날 함께 재판을 받은 건설업자 A씨 역시 엄 군수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반면 이와 별도로 본인 기업을 법률상 여성 기업인 척 속여 봉화군으로부터 받아낸 2억 8000여만원을 횡령한 점은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엄 군수 건강 상태를 고려해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엄 군수는 선고 이후 재판정을 떠나면서 “판결을 인정하느냐”는 취재진 물음에 별도로 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