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억대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남편 A씨를 숨지게 한 혐의로 공개수배된 이은해가 16일 오후 인천지방검찰청으로 압송되고 있다. /뉴스1

2014년 8월 23일 새벽 3시 충남 천안시 부산 방향 경부고속도로. 남편 이모(당시 44세)씨가 몰던 스타렉스 승합차가 갓길에 정차 중이던 8톤 화물트럭을 뒤에서 들이받았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캄보디아 출신 아내(당시 24세)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아내는 당시 임신 7개월이었다. 아기도 함께 숨졌다. 남편은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사고 당시 아내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의자를 뒤로 젖혀 잠들어 있었다.

2014년 8월 경부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현장. 만삭 아내와 뱃속 아기가 숨진 당시 현장의 영상 캡처(왼쪽). 만삭 외국인 아내 살해 사건 현장검증(오른쪽)./조선일보DB·연합뉴스

◇“범행동기 선명하지 않아”... 살인 무죄

사고 조사 과정에서 경찰과 검찰은 이씨의 고의 사고를 의심했다. 검찰이 이씨를 재판에 넘기며 제시한 정황 증거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 아내를 피보험자로 하는 보험만 25개에 들어 있다는 점. 보험금 총액이 100억원에 이르고, 사고 당시 매달 내야했던 보험료만 월 400만원이 넘었다. 충남 금산군에서 생활용품점을 운영하는 이씨 소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금액이었다. 사고가 나기 2~3개월 전에도 30억원 규모의 보험을 추가로 가입하기도 했다.

둘째, 숨진 아내의 혈흔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다. 하지만 검찰은 이씨가 수면제를 먹인 증거를 찾지 못했다. 이씨의 집 주변 약국 수십곳을 탐문했지만 이씨가 수면제를 구입한 사실 역시 확인하지 못했다.

셋째,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등에서 이씨가 사고 직전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아내가 타고 있던 조수석 쪽이 부딪히게 한 정황이 나왔다. 이씨의 주장대로 졸음운전 때문이 아니라 의도적인 사고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아내가 사망한 지 몇 시간 만에 화장장을 예약했고, 캄보디아에 있는 아내의 친정 식구들이 “한국에 갈 테니 화장을 미뤄달라”는 요구를 거부한 점도 이상하게 봤다.

‘캄보디아 만삭아내 사망사건’. 재판에서 이씨의 살인 및 보험사기 혐의는 무죄로 결론났다.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로 판단이 엇갈렸고, 대법원은 “범행동기가 선명하지 못하다”며 이들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전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은 2020년 8월 이씨에게 졸음운전 책임만 물어 교통사고특례법상 치사죄로 금고 2년형을 선고했다.

◇무죄나자 “보험금 달라” 줄줄이 소송

살인 혐의를 벗자 이씨는 보험사를 상대로 잇따라 민사소송을 벌이고 있다. 현재 소송 중인 보험사만 8곳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살인·사기 혐의가 무죄인만큼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보험사들은 “보험 가입에 부정한 의도가 있으면 계약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지난해 9월 삼성생명을 상대로 한 재판은 이씨가 승소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미래에셋을 상대로 한 재판에선 패소했다. 보험계약 당시 아내의 한국어 능력, 즉 계약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진정한 의사로 동의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결이 엇갈렸다.

지난 13일 라이나생명보험을 상대로한 재판에서도 이씨는 졌다. 재판부는 “숨진 아내가 만 18세 어린 나이에 한국에 와서 한국어 능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보험계약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서명했기 때문에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보험사기 적발금액

◇보험사기, 10년 만에 2배 늘었다

‘보험사기’는 점점 목숨을 노리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9434억원으로, 2011년 4236억원보다 122% 증가했다. 지난 10년 사이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적발 인원도 같은 기간 7만2333명에서 9만7629명으로 34% 가량 증가했다.

살짝 부딪힌 뒤 드러눕는 이른바 ‘나이롱 환자’는 줄어들지만, 살인, 상해, 자살, 자해 등 고의 사고 비율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적발금액으로 보면 지난해 전체 보험사기 중 고의 사고는 16.7%로, 2019년 12.5%, 2020년 15.4% 등으로 매년 증가하고, 같은 기간 고의로 살인·상해로 적발된 인원이 46명에서 97명으로 크게 늘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생명보험금이 고액이다보니, 가족이 공모해 가족을 살인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보험사기 범죄가 갈수록 지능화·조직화·흉포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니코틴 주입하고 물에 빠트리고... 또다른 ‘이은해’들

이른바 ‘가평 계곡 살인 사건’의 이은해(31)씨와 내연남 조현수(30)씨도 보험금 8억원을 노린 살인사건 피의자다. 인천지검은 지난 18일 이들에 대해 살인과 살인미수,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은 2019년 6월 30일 경기도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이씨의 남편 A(당시 39세)씨가 4m 높이의 바위에서 계곡물로 뛰어들게 한 뒤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데도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같은 해 2월과 5월에도 복어 피 등을 음식에 넣거나 낚시터 물에 빠뜨려 A씨를 살해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은해씨 남편이 숨진 경기 가평군 용소폭포. 이씨는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남편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뉴스1

2018년 8월 전 남편이자 아버지인 A(당시 57세)씨를 바닷물에 빠뜨려 숨지게 한 모자(母子)에게 징역 25년형이 각각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들은 자기 과실로 사망한 것처럼 꾸며 보험금 2900여만원을 타내고, 억대의 보험금을 추가로 받으려다가 붙잡혔다.

이들은 재판에서 “무능력과 무책임에 대한 원망, 모욕적인 언행으로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이 주목한 건 보험 16개였다. A씨 명의의 보험은 사망 시 13억2000만원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가족은 바로 보험금을 청구했다. 법원은 이 점을 보고, 사망보험금을 노린 모자의 살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2017년 4월에도 일본 오사카로 신혼여행을 갔던 20대가 아내(당시 19세)에게 니코틴 원액을 일회용 주사기로 주입해 살해한 뒤 사망보험금 1억5000만원을 타내려다가 붙잡혔다. 그는 앞서 2016년에도 같은 방법으로 해외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아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살인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법원은 “아내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도 부족해 혐의를 모두 부인하는 등 죄질이 나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