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K현대미술관. /최재훈 기자

피카소의 ‘재클린 시리즈’, ‘목욕하는 여인 습작’, 앤디워홀의 ‘캠벨스프 캔’, ‘마오’…

지난해 5월 2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K현대미술관’에 세계적 거장의 작품 38점이 도착했다. 16개국에 흩어져 있던 작품들이다. 경기 성남시의 의료기기업체인 ‘GTG웰니스’가 미술품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 토큰) 사업을 한다는 명목으로 구매했다. 요즘 유행하는 NFT와 연관지어 미술품을 구입한다는 점에 기업은 회가 동했다. 코스닥 ‘호재’이기 때문이다.

그림 사고 파는 일은 화랑이 하게되어 있는데, 유례없이 사립미술관이 백억대 그림을 중개했다. 회사는 갤러리, 미술관 구분도 거의 하지 못했다. “이번 가격과 수수료는 특별한 혜택”이라는 말에 기업은 좋아라했다. 그림값만 119억7000만원, 운송·통관·포장비용과 보험료, 대관료, 업무대행 수수료를 포함해 총 135억원이 들었다.

사흘 뒤, 이 미술관에서는 회사 임직원들이 모여 ‘프라이빗 오픈행사’도 열었다. 회사 관계자는 “그때만해도 세계적인 작품들을 확보했다는 사실에 모두가 들떠 있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11개월이 지난 지금, 회사와 미술관 양측은 민·형사 소송으로 맞서며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회사 측은 “미술품 사기를 당했다”며 미술관 관장 김모씨 등 3명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미술관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미술관은 “기업이 그림 보관료 15억원을 안준다”며 법원에 이 회사 파산신청을 했다.

첨예하게 엇갈리는 양측의 주장을 들어봤다.

◇미술품 잘못 사서 상장폐지 위기?

문제는 작년 7월부터 불거졌다. 코스닥 상장사인 GTG웰니스의 회계감사를 맡은 한영회계법인이 미술품 투자 관련 증빙자료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회사는 미술관에 진품감정서와 판매자에 돈을 송금한 내역, 통관 자료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술관 측은 자신들이 자체발행한 보증서를 내놓았고, 계약서상 ‘구매·판매자 관련 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는 조항을 들어 송금 내역과 통관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

한영회계법인은 지난달 22일 “미술품 거래의 자금 흐름과 타당성, 미술품 자산에 대한 가치 등을 판단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며 ‘의견거절’ 결론을 냈다. 이 회사 주식은 곧바로 주식시장에서 거래정지됐다.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것이다. 윤재철 부사장은 “미술관이 간단한 거래 자료만 공개해 줬어도 상장폐지 위기까지 몰리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관 측은 “미술품 거래는 관행상 거래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못하게 돼 있다”면서 “회계감사에 걸린 것도 미술품 투자보다는 특수관계인 거래에서 불투명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K현대미술관이 GTG웰닉스에 5억1000여만원에 판매한 피카소의 판화 작품 '재클린'.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회사 크리스티에서는 2013년 1억6000만원 정도에 낙찰됐다. / 크리스티 홈페이지 캡처

◇피카소와 앤디워홀… 진품은 맞을까

16개국에서 온다던 작품들이 미술관에 도착한 것은 계약 체결 후 딱 12일만이었다. GTG웰니스 관계자는 “너무 빨리 다 입고됐다길래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운영중인 대형 미술관이었기에 믿었다”며 “갈수록 가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미술관 측은 “통관 자료를 포함해 언제, 어디서, 누구를 통해 구매했는지 등은 일체 공개하지 않는 것이 미술품 거래의 관행”이라며 “모든 작품이 진품이라는 것은 미술관 자체 보증서를 통해 증명해 줬다”고 말했다.

회사는 지난달 국내 감정기관에 직접 감정을 의뢰했다. 감정협회 전문가들은 “미술관을 방문했지만 전시 중이라는 이유로 막아서 작품을 제대로 못보고 돌아왔다”고 했다. 두번째 방문에선 작품 대부분에 종이가 덧대어져 작가 서명, 판화 연번 등을 확인할 수 없었고, 도록과 소장이력(Provenance), 전시이력 등 관련 자료도 미술관 측이 제공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기 성남시에 위치한 의료기기 제조업체인 'GTG웰릭스' 본사 /회사 제공

◇“사기당했다” vs “보관료나 내놔라”

GTG웰니스 측은 “미술품 거래실적도 없는데 미술관이라는 간판에 속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술관 운영 법인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미술품 판매 실적이 총 1억6000만원 뿐이라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작년 우리랑 거래한 게 사실상 첫 실적이나 마찬가지였다”며 “구매 대행 수수료를 12억원이나 받아놓고, 실제로는 그림을 88억여원에 약 30억원을 얹어서 우리 회사에 되판 사실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술관 측은 “NFT 사업 성과가 나지 않고, 상장폐지 위기까지 닥치자 엉뚱한 곳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전성규 경영지원본부장은 “회계감사를 받는다며 몇달째 줄 수도 없는 자료 요구를 해오고, 직원들이 몰려와 위협도 했다”면서 “특히 미술관 1개 층을 전부 자기들 그림으로 채워놓고 보관료 한푼 내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밀린 보관료만 15억원에 달한다”고 했다.

사기 논란에 휘말린 피카소, 앤디워홀 작품을 NFT로 판매한다는 플랫폼업체 광고. GTG웰닉스가 구매한 그림 1점이 이 플랫폼을 통해 조각 판매됐다. /조선DB

◇의료기기 회사가 미술품 구매는 왜?

GTG웰니스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미술관 측 제안에 투자를 결정했다고 주장한다. 회사가 3년 연속 적자여서 신규 수익사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적어도 두배는 벌 수 있다고 했다. 실제 그림을 팔아 100% 이익에 도달하면 20%를 떼어 주기로 하는 수익배분 합의서도 썼다”고 말했다.

미술관 입장은 정반대다. 회사 측이 먼저 찾아와 “NFT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그림 구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미술관 관계자는 “(회사는) 해외 유명 화가의 그림을 원했고, 150억원 규모의 예산이 준비돼 있다고 해서 조건에 맞춰 그림을 구해줬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미술품 거래 과정에서는 석연찮은 점도 적잖다. 지난해 11월 이 회사는 NFT 업체에 그림 1점을 매각하고, 그림을 산 회사는 작품을 NFT로 만든 뒤 1000개로 쪼개 NFT플랫폼에서 ‘조각 판매’했다.

회사는 또 지난 2월 회계감사 결과가 나오기 직전에도 다른 법인에 그림 17점을 50억원에 팔았다. 하지만 보관료 분쟁이 벌어지며 그림은 미술관에 묶여 있는 상황.

미술관 측 행태도 이례적이다. GTG웰니스 경영진이 참여하고 있는 ‘코인투자조합’에 미술관이 억대의 투자를 했고, 회사의 한 임원과는 별도로 자문 계약도 맺었다. 업계에서는 “미술관과 회사 경영진이 짜고 미술품 거래를 가장해 회삿돈을 빼돌린 것 같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기사가 나간 뒤 미술관 측은 추가 입장을 본지에 전해 왔습니다.

첫째, GTG웰니스와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는 미술관이 아니라 미술관을 운영하는 법인인 ‘연진케이’다. 미술관은 공간과 관련 서비스만 제공할 뿐이다. 따라서 그림 구매를 중개한 것도, 소송을 벌이는 당사자도 연진케이다.

둘째, 연진케이는 작품 판매와 관련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제공 또는 공개했다. K현대미술관 명의로 발행한 보증서에 소장이력과 전시 내역, 작품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 작품의 상태 및 상세정보 등을 담았다. 이는 공증까지 받아 GTG웰니스에 제공했다.

셋째, K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 현장 감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작품을 해체해 검수할 수 있는 테이블과 장갑도 제공했다. 다만 작품 해체를 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오지 않아 첫 방문 때 감정이 진행되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