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부산 기장군 한 항구에서 발생한 차량 추락사고 현장. 멀리 보이는 등대 방향으로 차량은 바닷물에 빠졌고, 운전석에 있던 여동생 A씨는 숨졌고, 조수석에 탄 오빠는 탈출했다. /독자 제공

지난 3일 낮 12시쯤 부산 기장군의 한 항구. 스파크 승용차 1대가 부둣가에 멈춰섰다. 운전석에 타고 있던 40대 남성이 차에서 내려 주위를 배회한 뒤 다시 차에 타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2시간쯤 뒤 이 남성은 운전석에서 내려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겨 탔다. 그리고 얼마 뒤 차량은 스르륵 전진했다. 약 1m높이의 부두 아래로 추락했고, 차량은 순식간에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해양경찰이 확보한 인근 CCTV(폐쇄회로)에 잡힌 사고 당시 모습이다.

20분쯤 뒤 해경과 119구조대가 도착했고, 물에 잠긴 차량 운전석에서 의식을 잃은 A(40)씨를 구조했다. 그런데 구조된 A씨는 여성이었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조수석에 탔던 남성은 탈출해 물밖으로 나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구조대원들은 당시 “운전자가 안전밸트를 맨채 의식을 잃고 있어 창문을 부수고 구조했는데, 조수석에는 창문이 열린 채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암 진단, 보험수익자 변경... 그리고 추락

탈출한 남성은 숨진 A씨의 친오빠였다. 그는 경찰에서 “운전미숙 등으로 우연히 일어난 사고”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해경은 사고 직전 운전자가 바뀐 점, 조수석 창문이 열려 있는 점 등이 석연찮았다. 또 사고 조사에 나선 보험사로부터 넘겨받은 A씨 남매의 사고이력과 보험이력 등에서 보험금을 노린 범죄를 의심할만한 정황을 여럿 발견했다. 울산해경 관계자는 “오빠의 진술이 앞뒤가 안맞는 부분이 있어 ‘보험 사기’ 가능성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과 보험 조사 과정에서 숨진 A씨는 작년 9월 암 진단을 받아 보험사로부터 치료비 등 4000여만원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월에는 A씨 명의의 최대 한도 5억원의 자동차상해보험 수익자가 법정상속인에서 오빠로 변경됐다고 한다.

숨진 A씨가 가입한 보험은 총 3개, 보장 한도는 총 6억원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3일 차량 추락 사고가 난 부산 기장군 한 항구에서 해경이 크레인으로 물에 빠진 차량을 인양하고 있는 모습. /독자 제공

◇10개월 사이 ‘車 추락사고’만 3차례

A씨 남매는 추락 사고가 나기 보름 전인 지난달 18일 오후 7시 30분쯤 부산 강서구 둔치도(島) 부근에서 티볼리 승용차를 탄 채 바다에 빠졌다. 이때도 운전자는 A씨였고, 오빠는 현장에서 사고 신고를 했다. 함께 타고 있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날 사고는 수심이 낮아 차량 앞부분만 물에 빠지는 바람에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보험사에선 보험금 1200여만원이 책정됐지만, 차량 압류 때문에 보험금은 받지 못했다.

이후 A씨는 보험 대상 차량을 스파크 승용차로 바꿨고, 이 차를 몰고 부둣가에 갔다가 다시 추락한 것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기혼자가 자동차보험의 수익자를 오빠로 바꾸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라며 “마치 두 사람이 사전에 계획한 사고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었다. 작년 7월 A씨 남매의 아버지(당시 76세)도 차량 추락 사고로 숨졌다. 오후 6시 50분쯤 부산 강서구 서낙동강 둑길에서 A씨 오빠 소유의 모닝 승용차가 미끄러져 강물에 빠졌고, 운전석에서 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당시 오빠는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한 뒤 헤어졌는데 연락이 안된다”며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고, 119구조대가 수색에 나서 강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차량을 발견했다. 이 사고로 아버지가 가입한 2개 보험사에서 보험금 1억7000만원 가량이 나와 자녀들에게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A씨 아버지가 차량 추락사고로 숨진 채 발견된 부산 강서구 서낙동강. 실종 당시 잠수부가 수색을 벌이고 있는 모습. / 부산경찰청 제공

◇기막힌 불행의 연속? 보험금 노린 사고?

A씨 가족의 잇따른 차량 추락 사고에 대해 보험업계에선 “교통사고를 위장한 보험 사기 사건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말한다. 한 보험사기특별조사팀(SIU) 관계자는 “A씨 가족에게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장소와 방법 등이 너무 닮았다”면서 “경찰 수사에서 살인이나 자살을 도운 사실이 밝혀질 경우 보험사는 면책 사유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A씨 오빠의 고의적 교통사고나 촉탁살인(자살 방조) 등의 범죄 혐의가 드러나더라도 현재 단계에서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즉 보험사기죄가 성립되기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 해석이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자동차보험의 경우 통상 사고접수 시점을 보험금 청구 시점으로 보기 때문에, 범행의 시도는 있었지만 보험금을 타기 전 상황이므로 보험사기 미수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이른바 ‘계곡 살인’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이은해(31)씨 경우도,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청구했으나 수령하기 전에 범행이 들통났기 때문에 검찰은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미수 혐의를 적용했다. 이와 별도로 이씨에게는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가 적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