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강물에 빠져 숨지고, 딸은 바다에 빠져 숨졌습니다. 두 사람 모두 암 진단을 받았고, 소형 승용차를 몰다 사고가 났습니다. 이 가족에게 일어난 기막힌 ‘연쇄 차량 추락사고’ 현장엔 항상 아들이자 오빠인 40대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신고자로, 한번은 동승자로. 해경과 경찰은 그를 의심합니다.설마 가족을?... ‘보험 사기’ 의혹의 실체를 계속 추적합니다.
한 가족이 10개월 동안 차가 물에 빠지는 사고만 3차례 당해 아버지와 딸이 잇따라 숨진 사건과 관련, 사고 때마다 등장했던 40대 아들의 ‘보험 사기’ 의혹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2차례 바다 추락사고 끝에 딸 A(40)씨가 숨진 사건을 수사중인 울산해양경찰서는 최근 아들 B(43)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또 바다에서 인양한 사고 차량에서 사고기록장치와 A씨 휴대폰, 블랙박스 등을 수거해 정밀 분석 중이다. 해경 관계자는 “운전자의 단순 실수라든지, 운전 미숙 같은 자연스러운 사고라고 보기엔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면서 “자살 방조나 살인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작년 7월 남매의 아버지(당시 76세)가 숨진 서낙동강 추락사고도 당시 단순 사고로 처리했던 부산경찰이 다시 살펴보고 있다. 재수사 여부를 검토 중인 것이다.
◇추락 직전 기어 ‘D’로 누가 옮겼나
지난 3일 오후 2시 16분쯤 부산 기장군 한 항구에서 스파크 승용차가 바다에 추락해 운전석에 있던 A씨가 숨졌다. 조수석에 탄 오빠 B씨는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경찰이 확보한 사고 현장 CCTV(폐쇄회로)에는 사고 직전 B씨의 의심스러운 행동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낮 12시쯤 부둣가로 차를 몰고 온 건 B씨였다. 그는 운전석에서 내린 뒤 문을 열어놓은 채 상체를 차량 안으로 깊숙이 넣어 무언가를 수차례 끌어당겼다. 조수석에서 운전석 쪽으로 무거운 무언가를 옮기는 모습이었다. 이후 B씨는 조수석에 탔다가 내렸다가를 몇 차례 반복하고 주변을 배회했다.
두 시간쯤 뒤 B씨가 조수석에 타자, 차량은 뒷면 브레이크등에 불이 켜졌다가 꺼지면서 스르륵 앞으로 움직였다. 기어가 P(Parking)에서 D(Drive)로 옮겨진 것이다. 차량은 10여m 가량 전진하다 바다로 떨어졌다.
CCTV에는 해경과 119구조대가 도착해 차량 내에서 의식을 잃고 있던 여동생 A씨를 구조하는 사이 열린 조수석 창문으로 탈출한 B씨가 헤엄쳐 육지로 나오는 모습도 찍혀 있다고 한다. 해경 관계자는 “현재로선 오빠가 여동생을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옮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추락 전 여동생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직접 기어 조작을 했는지 여부가 중요한 부분이어서 부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에 전화한 여성... 여동생 맞나
B씨는 여동생이 가입한 보험의 수익자 변경, 보험 대상 차량 변경, 보험 한도액 증액 등에 직접 관여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는 지난 2월 여동생의 자동차보험 수익자를 법정상속인에서 자신으로 변경할 때 여동생과 함께 직접 보험사를 찾아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동생은 법정상속인인 남편과 자녀가 있는 상태였다.
또 지난달 18일 부산 강서구 둔치도(島) 부근에서 여동생의 티볼리 승용차가 바다에 빠져 파손되자, 보험 대상 차량을 스파크 승용차로 변경하기 위해 보험사에 전화를 건 사람도 오빠 B씨였다. 스파크는 B씨 지인의 것이었다. 보험사 측에서 가입자 본인 확인을 요구하자, 한 여성을 바꿔줬는데 이때 여성의 목소리가 앞서 다른 상담 때 녹음된 여동생 목소리와 달랐다고 한다. 힘이 하나도 없이 묻는 말에 짧게 대답만 했다는 것이다.
보험사 측은 누군가 여동생 A씨 목소리를 흉내냈거나, 여동생 병세가 악화돼 목소리가 다르게 들렸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날 여동생의 자동차보험은 상해담보가 추가됐다. 월 납입금 몇 만원만 더 내면 사망보험금 한도가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10배 늘어나도록 변경된것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 약관 변경이나 한도 증액 등이 가입자 본인의 진의가 아닌 상태에서 이뤄졌다면 보험금은 지급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도 암 투병 중 추락사고... 사망
부산 강서경찰서는 B씨 남매의 아버지가 숨진 작년 7월 부산 강서구 서낙동강 추락사고를 다시 살펴보고 있다. 보험 사기를 의심받고 있는 오빠 B씨와의 연관성을 확인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당시 아버지 사체에서 약물 등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고, 유의미한 증거나 목격자도 없었다”며 “새로운 단서가 나오면 재수사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실종신고를 했던 아들 B씨는 경찰에서 “아버지가 평소 이곳에서 자주 낚시를 했고, 이날도 함께 낚시를 한 뒤 헤어져 연락이 안됐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날 B씨는 아버지가 타고온 모닝 승용차가 아닌, 다른 차량으로 현장에 갔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여동생의 티볼리 차량이 바다에 빠졌던 둔치도 사고 때도 B씨는 다른 차량으로 현장에 갔다가 사고 신고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숨진 아버지도, 여동생처럼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 2개 보험사로부터 나온 보험금 1억7000여만원은 자녀 대표로 B씨 계좌로 지급됐으며, 서로 얼마씩 나눠가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