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9일 밤 10시쯤 강원도 원주시 한 아파트에서 주부 A(27)씨가 흉기에 찔려 병원에 실려갔다. A씨 남편은 119구급대와 경찰에 “아이가 과일을 먹고 싶다고 해서 아내가 부엌에서 과도를 들고 오다가 화장실 쪽에서 넘어져 목 부위가 찔렸다”고 했다. A씨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18일만에 숨졌다.
아내가 숨진 지 이틀 뒤, A씨 남편은 보험사에 아내의 입원·치료비를 청구했다. 의료비 중간정산 등으로 보험금의 일부를 긴급 지급하는 ‘신속지급제도’를 이용했다. 보험사는 실손 보험금 1000만원 중 600만원을 우선 지급했다. 한달쯤 뒤, 남편은 아내 A씨의 사망보험금 1억원을 청구했다. 그런데 보험 심사 과정에서 미심쩍은 부분이 여럿 발견됐고, 이 같은 내용을 경찰에 알렸다.
◇우연한 사고일까? vs. 자살 혹은 타살?
우선 A씨가 흉기에 찔린 부위(오른쪽 목)가 우연한 사고로 다치기엔 이례적인 부위다. 또 30대 초반인 남편의 직업이 보험설계사였고, 그는 아내가 병원에 실려간 지 이틀만에 병원에서 경찰제출용 진단서를 발급 받았다고 한다. 남편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경찰이 진단서 제출을 요구해서 발급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특히 남편은 아내의 사고 한 달전쯤 허위사실로 보험금을 타내려고 했다가 적발된 이력이 있었다. 부부싸움 도중 아내의 치아 4개가 부러졌는데,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해 있던 지인에게 부탁해 그 지인의 실수로 아내가 다친 것처럼 꾸며 배상보험금을 받아내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을 밝혀낸 보험사는 당시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고, 보험금 청구를 취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남편 주장은 달랐다. 그는 “아내가 지인이 몰던 차에 타고 있다 급정거 때문에 치아가 부러진 것”이라며 “부부싸움은 없었고, 보험조사 도중 아내가 사망하는 바람에 조사가 중단되고 종결된 것”이라고 했다.
A씨 명의로 가입된 보험은 3개 보험사, 3건으로 모두 남편이 권유해 가입한 것이었다. A씨 사망시 남편이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은 총 4억원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의 사망 원인과 경위 조사에 집중하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A씨의 부검을 의뢰하는 한편, 남편 등 유족을 상대로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타살인지 여부를 확인 중이다. 원주경찰서 관계자는 “사고 현장의 혈흔 등으로 볼 때 타살 가능성은 낮아보이지만, 당초 유족의 주장대로 우연한 사고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서 “사망 원인부터 밝힌 뒤 보험 사기 의혹에 대해서도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내의 사망에 대해 남편은 “아내는 새집에 이사와서 기분이 좋은 상태여서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며 “사고 당시 나는 다른 방에서 아이 목욕을 시키느라 직접 보지 못해 당연히 사고라고 추정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자살의 경우 고의적 사고이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 면책 사유가 되고, 자살을 사고사로 거짓 접수하면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족 대상, 치밀한 계획 범죄... 매년 늘어
보험금을 노린 살인과 상해, 자살, 자해, 방화 등 극단적인 ‘보험 사기’ 범죄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금융감독원 통계를 보면, 지난 2019년부터 작년까지 3년 동안 고의적 살인·상해로 적발된 사람은 46명에서 72명, 97명으로 늘었고, 적발 금액도 33억원에서 37억원, 52억원으로 증가했다. 이를 포함해 자살과 자해, 방화 등 고의적 사고로 인한 보험 사기 적발 인원은 같은 기간 7831명에서 1만225명, 1만2103명으로, 적발 금액도 1101억원, 1385억원, 1576억원으로 매년 증가세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국민들을 놀라게 한 ‘이은해 사건’처럼 보험금을 둘러싼 충격적인 사건은 보험업계에선 종종 접할 수 있는 일”이라며 “다만 제대로 밝혀내 처벌까지 이어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 수사나 보험 조사 과정에서 ‘고의성’ 입증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보험 사기는 주로 가족을 범행 대상으로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가 많기 때문에, 정황은 있지만 직접 증거를 찾지 못해 수사에 실패하거나 재판에서 무죄를 받는 일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정황 넘쳐도 증거 없어 무죄... 이은해는?
‘이은해 사건’ 역시 보험 조사 단계에서 사고 직전 보험 집중 가입, 또 다른 보험 사기 이력 등 의심스러운 정황은 있었지만 2년 넘게 사건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재수사 끝에 검찰은 이씨가 내연남 조현수씨와 짜고 8억원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수영을 못하는 남편을 억지로 계곡에서 뛰어내리게 해 숨지도록 만들었다고 결론내고, 지난달 이들에게 작위 살인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이 혐의에 대해선 부인하고 있고, CCTV 등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이어서 재판 결과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2018년 12월 전남 여수 금오도에서 발생한 차량 추락사고도 비슷하다. 재혼한 부부가 혼인신고 직후 해돋이를 보려고 금오도에 갔다가, 남편이 승용차를 후진하던 중 난간을 들이받자 기어를 중립(N)에 놓고 차에서 내린 사이 차가 바다로 추락해 타고 있던 아내가 숨진 것이다. 사고 직전 아내 명의로 17억원을 탈 수 있는 보험이 가입됐고, 수익자는 보험설계사이던 남편으로 바뀌어 있었다. 남편은 구속기소돼 1심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2020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의심스운 사정은 있지만, 아내의 사망이 남편의 고의적인 범행 때문이 아닐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게 판결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