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북부지법./조선일보DB

지적장애인의 노동력을 30년 넘게 착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스님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스님은 피해자의 명의를 도용해 부동산 거래를 하는 등의 혐의도 받고 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3단독 김병훈 판사는 8일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부동산실명법 위반, 사문서 위조 및 위조 사문서 행사 혐의로 기소된 서울 노원구의 한 사찰 주지스님 최모(71)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최씨는 지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지적장애인 A씨에게 사찰 마당쓸기와 잔디깎기, 농사 등을 시키고 1억2900여만원의 급여를 지급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2008년부터 시행됐기 때문에 2008년부터의 행위만 기소됐다. 실제 A씨는 지난 1985년부터 사찰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 사건은 지난 2017년 12월 A씨가 사찰에서 탈출하며 ‘장애인 노동 착취 사건’으로 세간에 알려졌다. A씨가 탈출했을 당시 경찰이 수사에 나섰으나 몇 건의 폭행만 인정돼 최씨에게 벌금 500만원의 약식명령이 내려졌다. 이후 2019년 7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최씨를 노동 착취로 고발하며 재수사가 시작됐다.

최씨는 지난 2016년 자신이 소유한 서울 노원구의 아파트를 A씨 명의로 돌리고, 은행에서 입출금 전표를 A씨 명의로 위조해 행사한 등의 혐의도 받아왔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최씨와 사찰 측은 “A씨의 가족이 A씨를 절에 두고 갔고, 최씨가 A씨를 거둬들인 것인데 최씨만 나쁜 사람이 돼 억울하다”며 “A씨에게 당뇨가 있어 아파하는 것을 돌봐줬고, 이빨도 다 빠져서 임플란트 비용만 3000만원 넘게 부담해줬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의식주를 제공하고 수술비와 치아 임플란트 비용을 부담한 것 만으로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에게 아무런 금전적 대가를 지급하지 않은 채 30여년간 일을 시킨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며 “피고인이 악의적으로 장애를 이용해 피해자를 금전적으로 착취했다는 범죄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다.

이어 재판부는 “최씨가 아파트 권리 등기증을 가지고 있었고, 아파트를 매수한 지 5개월여 만에 매각하면서 그 매매 대금을 가져갔다”며 A씨의 노후를 위해 아파트를 증여한 것이라는 최씨 측 주장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최씨가 범행 사실에 대해 변명하기 급급할 뿐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으나, 사문서 위조 및 위조 사문서 행사 부분은 인정하고 있고 A씨의 뇌수술 및 치아 임플란트 시술을 받도록 적지 않은 돈을 부담한 점 등을 고려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한편, 재판부는 최씨를 법정 구속하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이지 않고, 피해자와의 합의 및 현재 피해 변제의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