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한 상태로 애인과 말다툼 끝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에게 검찰이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반면 해당 남성의 변호인 측은 남성이 불을 지른 직접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재판부는 판결을 유보했다.
대구지법 형사 12부(재판장 조정환) 심리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기소된 A(39)씨에 대해 검찰이 징역 30년을 구형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1월 3일 경북 구미시 봉곡동의 한 다세대주택 2층에서 불을 질러 동거하던 여성 B(60)씨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B씨와 함께 집 안에 있던 A씨는 홀로 집 밖으로 뛰쳐나왔고 B씨는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한 달여간 치료를 받다 패혈증으로 숨졌다.
지난 21일 배심원 9명이 배석한 국민참여재판에서 재판부는 A씨에 대한 판결을 유보했다. 12시간이 넘은 재판에도 불구, 배심원단과 재판부의 의견이 상당 부분 엇갈린 결과다. 국민참여재판은 원칙적으로 피고인의 유·무죄에 대한 배심원단 전원의 의견이 일치하는 ‘만장일치 평결’을 참고해 재판부가 판결을 선고하게 된다. 만장일치 평결에 이르지 못할 경우 다수결로 평결하는데, 배심원단 내에서도 A씨에 대한 유·무죄 의견이 팽팽히 나뉜 것이다.
◇ 불 질렀다 vs 증거 없다
재판의 쟁점은 A씨가 불을 지르는 순간의 목격담이나 영상 등 직접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A씨에게 죄를 물을 수 있는지였다.
검찰은 A씨의 범행 동기·휘발유 구입 사실 등을 토대로 A씨가 유죄라고 판단했다. 사건 당일 A씨는 B씨와 술을 마시며 말다툼을 하던 중 건물주로부터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왔으니 조용하라”는 취지의 전화를 받고 격분했다. 이후 A씨는 집을 나와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구입했고 B씨에게 “살고 싶으면 나가라, 돌이킬 수 없다, 불 질러버리겠다”는 문자를 보낸 뒤, 건물주가 거주하던 4층을 찾아갔다. 수차례 초인종을 눌렀지만 응답이 없자 A씨는 2층의 집으로 돌아왔고, 20여분 뒤 이곳에서 불이 났다. 대구지검 관계자는 “방화 사건은 대부분 간접 증거에 의해 유죄가 인정된다”면서 “A씨가 범행 당일 불 지른다는 문자를 보내고 휘발유를 산 뒤 화재가 발생했다”며 A씨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반면 A씨 변호인 측은 무죄를 주장했다. 검찰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A씨의 범행을 입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이유다. A씨 변호인은 “A씨는 건물주에게 화가 나 불을 지르겠다고 말한 것일 뿐, 실제 방화 의도는 없었다”면서 “휘발유를 산 이유도 B씨가 ‘불 질러보라’고 도발하자, A씨 본인도 성격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사건 직후 화상 치료를 받던 B씨가 “본인(B씨가)이 불을 붙였나”라는 수사 당국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점, A씨 역시 “B씨가 불을 질렀다”고 진술한 점도 변호인 측 반박 증거로 사용됐다. 그러나 발화 상황에 대한 A씨와 B씨의 기억은 서로 달랐고, 명확하지 않았다.
A씨는 최후 진술에서 “판결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정말로 불을 안 질렀기에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라며 “사람을 해칠 정도로 짐승처럼 살진 않았다”고 말했다. A씨에 대한 선고 공판은 오는 28일 오전 대구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