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다단계, 주가조작... 사기꾼과 투자 피해자의 경계가 없어요”
“다들 한방 터뜨리려고 달려들잖아요. 또 다른 한방을 위해 수시로 옮겨 타기도 하고요.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겁니다.”

K는 ‘코인 사기’ 전문가다. 10년전 쯤 이 바닥에 들어왔는데, 업계에서는 그를 ‘선수’라고 부른다. 직접 코인을 만든 적도, 거래소를 운영한 적도 있다. 사기 일당과 연루돼 조사를 받았고, 수사기관의 자문도 여러 번 했다. 신용카드 포인트, 게임 머니, 인터넷 쇼핑몰 적립금 관련 일을 하다가 코인 쪽으로 넘어왔다. 그가 [사모당]과 인터뷰에 응했다. 그의 입을 통해 ‘코인 사기’의 구조와 실체를 들어봤다.

가상화폐 /게티이미지

- 코인 사기가 뭔가.

“너무 복잡하고 다양해서 ‘코인 사기는 이거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코인 제작, 유통, 상장, 엑싯(EXIT·투자금 회수)까지 모든 단계에서 사기가 일어난다. 코인판에는 다단계와 주가 조작꾼까지 모두 들어와 있다. 큰 판이다. 만들지도 않은 코인을 있다고 속여 팔기도 하고, 가짜 거래소 사이트를 만들어 상장됐다고 속이기도 한다.”

- 없는 걸 있다고 속이는데 투자자가 당하나.

“이런 초보적 사기는 많이 사라진 편이다. 문제는 정상 코인처럼 포장해 상장을 하고, 거기에 주가 조작 수법까지 동원해 일순간 휴지조각을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1000원 하던 코인이 0.1원이 됐다면 어떨 것 같나.”

- 코인 사기에 직접 가담했었나.

“처벌받은 적 없으니 직접 가담했다고는 할 수 없다. 사기꾼은 아니라는 말이다.(웃음) 그러나 어떤 시스템으로 사기가 이뤄지는지 아주 가까이서 봤다. 어느 포인트에서 돈을 털어 먹는지를 안다.”

- 실제 목격한 사례를 소개해달라.

“2019년 국내에서 발행된 이른바 ‘잡코인’이 있었다. ‘환차익으로 비트코인을 시가보다 싸게 살 수 있다’는 게 포인트로, 상장만 되면 대박난다고 홍보했다. ‘원금 보장’을 내걸고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 200여명으로부터 약 100억원 유치했고, 실제 해외의 한 거래소에 상장했다. 상장 초기 1000원까지 갔던 가격은 기획자들(코인업체)이 자신들의 물량을 던지면서 폭락해 0.1원이 됐다. 이후엔 거래 자체가 사라졌다. 4~5개월 뒤 코인은 거래실적 부족으로 상장 폐지 됐다.”

자료=경찰청

- 사기꾼들은 잡혀갔나.

“다단계 하위 투자자 100여명이 고발한 사건이었는데 코인업체 대표 1명과 다단계 상위 투자자 1명만 처벌받았다. 그것도 유사수신 혐의만 적용됐다. 약속했던 상장을 실제 했으니 사기 혐의는 빠져나갔고, 가격 폭락에 따른 피해는 투자 손실로 판단됐다. 실제 가격을 띄워 올린 이른바 ‘리딩방 작업(코인 시세 조작)’ 등은 밝혀내지 못했다.”

- 수사가 잘 안된 것인가.

피해자들이 중간에 고발을 취하하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으로 돌아섰다. 다른 코인으로 옮겨탄 것이다. 다단계 윗선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수당을 더 많이 주겠다’고 꼬셨다 들었다. ‘수사받을 시간에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원금 빨리 복구해야지’ 하면서. 다단계 특성상 어디에 투자를 하든, 무엇을 팔든 돈만 벌면 된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들 이동해버린다.

폭락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지원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주요 암호화폐 시세가 나타나고 있다. /뉴스1

- 코인업체가 다단계를 끌어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코인은 누구나 채굴 가스값 30만~40만원 있으면 20분만에 금방 만들 수 있다. 파는 게 문제다. 팔아야 유저가 확보되고 유저가 많아야 상장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깔세(보증금 없는 단기 월세)로 사무실 차려놓고 개발비나 기획비, 영업비 등도 빌려서 시작하는 코인 업체들이 대부분이다. 다단계를 통해 투자금을 모아야 프로젝트를 끌고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이 투자자이자 유저가 되는 셈이다.”

- 운영 방식이나 수익 배분은 어떻게 되나.

“100억원을 모았다고 치자. 이중 60억원은 다단계 투자자들 수당으로 나가고, 20억~30억원은 개발비 등 초기 투자금 상환과 새 투자자를 모집하는 홍보비, 영업비 등으로 쓴다. 나머지는 운영비 명목의 기획자들 몫이다. 다단계의 경우, 보통 계약기간을 2~3개월로 하고, 등급(보통 10개 등급)에 따라 투자금의 2~30%까지 수당을 일별로 계산해 지급한 뒤 마지막에 원금을 돌려준다고 약속한다. 수당 지급 현황은 전산시스템으로 누구나 볼 수 있게 투명하게 만들어 놓는다. 2%를 받는 하위 투자자들이 20~30%씩 받는 상선을 보면서 부러워하게 만드는 것이다.”

- 코인회사(기획자)가 실제 많이 벌지는 못하는 것 같은데.

“다단계를 통해 모은 투자금만 보면 사실 그렇다. 훗날 상장 후 한방을 터뜨리기 위해 준비하는 정도다. (기획자들은) 고급수입차를 타고 다니고 유력인사들을 병풍 세워 기존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주고, 새로운 투자자들을 모집하는데 올인한다. 상장 후엔 리딩방을 섭외해 엑싯을 준비한다. 리딩방 선수들이 자전 거래 등으로 가격을 띄우면 자기들이 갖고 있던 코인을 비싼 가격에 털고 나가는 것이다. 그들은 보통 발행 코인의 절반 가량을 숨겨두고 있기 때문에 이 포인트에서 엄청난 돈을 벌게 되고, 이를 리딩방 선수들과 나눠 먹는다.”

지난달 19일 오후 국산 가상화폐 루나코인과 테라코인 피해자들을 대리해 법무법인 LKB&파트너스 김종복 변호사가 서울남부지검에 고소·고발장을 접수하러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 저런 잡코인도 거래소에서 상장을 해주나.

“사기 업체일수록 원화 거래가 가능한 국내 거래소 상장은 시도하지 않는다. 홍콩과 싱가포르 등 동남아의 비주류 거래소를 노린다. 에이전시만 잘 만나면 헐값에 상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돈 주고 상장하는 셈이지. 거래소마다 기준은 다르지만 상장은 보통 유저 수와 사업 목적, 비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뤄진다. 기획자 입장에선 어디든 상장만 하면 되기 때문에 쉬운 곳을 찾기 마련이다.”

- 국내 거래소는 왜 피하나.

“현재 국내에서 원화 거래가 가능한 거래소는 5곳(고팍스, 빗썸, 업비트, 코인원, 코빗) 뿐이다. 지난해 말 특정금융정보법이 생기면서 나머지는 코인간 거래만 가능하게 돼 있다. 당초 200개가 넘는 거래소가 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실제 신고를 받아 걸러낸 뒤 현재는 30여 개만 남아 있다. 사기 치려는 사람들 입장에선 거래 흔적 등이 추적 당할 수 있는 국내보다는 해외가 투자자들 속이기도 수월하고 그럴싸하게 포장하기도 좋다.”

- 사기 당하지 않는 비법이 있을까.

“남들보다 싸게, 100% 버는 게임, 원금 보장, 10배 100배... 이런 말로 유혹한다면 일단 사기를 의심해야 한다. 수익을 약속할 수 있는 투자는 없다. 그 자체가 사기다. 거래소 상장을 목적으로 하는 코인은 무조건 피하라. 상장 여부와 상관없이 코인이 어디에 쓰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용해서 코인회사가 성장할지를 봐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코인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는 것이지, 단번에 벌 수 있는 투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