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방·고등법원 전경. /이승규 기자

술에 취한 상태로 애인과 말다툼 끝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은 30대 남성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남성이 불을 질렀음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구지법 형사 12부(재판장 조정환)는 28일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기소된 A(39)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11월 3일 경북 구미시 봉곡동의 한 다세대주택 2층에서 불을 질러 동거하던 여성 B(60)씨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B씨와 함께 집 안에 있던 A씨는 홀로 집 밖으로 뛰쳐나왔고 B씨는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한 달여간 치료를 받다 패혈증으로 숨졌다. A씨가 불을 지르는 순간을 담은 영상이나 목격담 등 직접 증거는 없었다.

검찰은 화재 발생 직전 A씨가 B씨와 술을 마시며 말다툼을 했던 점, 이후 건물주로부터 “시끄럽다”는 전화를 받고 A씨가 휘발유를 구입해 집으로 돌아온 뒤 불이 난 점 등을 토대로 A씨를 기소했다. 대구지검 관계자는 “A씨는 B씨에게 “살고 싶으면 나가라, 불 질러버리겠다”는 문자를 보냈고 이후 실제로 불이 났다”면서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반면 A씨 변호인 측은 A씨가 건물주에게 화가났을 뿐 B씨를 살해하거나 건물에 불을 지를 의도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A씨 변호인은 “(A씨가)휘발유를 구입한 이유는 B씨가 ‘불 질러보라’고 도발하자 A씨 본인도 성격이 있다는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사건 직후 화상 치료를 받던 B씨가 “본인(B씨가)이 불을 붙였나”라는 수사 당국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점, A씨 역시 “B씨가 불을 질렀다”고 진술한 점도 변호인 측 반박 증거로 사용됐다. 다만 B씨는 발화 요인에 대해 “고기를 구워먹다 부탄가스에 불이 붙었다”는 취지로 진술했으나, 수사 결과 휘발유에 의한 방화로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지난 21일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선 배심원 9명중 5명이 A씨에 대해 무죄, 4명이 유죄 평결했다. 배심원단 내에서도 A씨에 대한 유·무죄 의견이 팽팽히 나뉜 것이다.

재판부는 “A씨의 진술이 모순되는 부분이 있으나 간접 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하려면 그 증거가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범행을 뒷받침할 수 있어야한다”면서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론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A씨의 혐의가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