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가 덮친 1999년 말, 이석호(가명·67)씨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다단계회사를 차렸다. 장뇌삼 등 건강보조식품 판매를 내걸었지만, 실제는 ‘사람 장사’라 불리는 다단계 사기였다.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사건으로 불리는 조희팔 사건(2008년)과 제이유그룹 주수도 사건(2006년)도 터지기 전이었고, 유사수신규제법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다. 국내 다단계업계의 초창기 멤버인 셈이다.
이씨는 1년3개월만에 대표이사를 넘겨주고 빠져 나왔고, 회사는 그로부터 3년 뒤 파산했다. 그는 “경쟁업체가 크게 늘고, ‘회원 뺏기’ 경쟁이 벌어지는 걸 보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손 뗀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불법 다단계업계에선 원로 대접을 받는다. 이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단계 사기’의 어제와 오늘을 들어봤다.
- 다단계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있었나?
“공무원 퇴직 후 건설업을 하다 IMF 때 부도를 맞았다. 선불 전화카드 등을 팔던 국내 유명 다단계회사에 들어가 회원 상대로 영업 교육을 했다. 먹고 살려고 여기저기 강의 다니다 다단계를 처음 접했다. 다단계 교육은 정말 열기가 후끈했다. 다들 돈 벌 기대감에 호응도 좋고 에너지도 넘쳤다. 회원들 심리를 잘 안다고 생각한터라 회사를 차렸다. 당시만해도 모두들 ‘황금알 낳은 거위’로 생각해 너도나도 뛰어들 때였으니까.
조희팔(1957~2011년 사망 주장)이도 그때 내 강의를 듣곤 했다. 나한테 다단계를 배운 거지.(웃음) 시골에서 노가다 하다가 올라와 행색이 초라했다. 회사 청소해주고 라면이나 밥 얻어먹곤 했는데, 몇 년 뒤 그 큰 사고를 쳤더라.”
조희팔은 20004~2008년 전국에 다단계업체 10여개를 차려 의료기기 렌탈사업을 미끼로 7만여명으로부터 4조8000여억원을 끌어모아 이중 2400억원을 가로챘다. 국내 사기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다. 2008년 범행이 들통나자 중국으로 밀항했고, 2011년 말 숨졌다고 유족은 주장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진위 논란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 사건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가 10명이 넘는다.
- 그 시절 다단계업계 분위기는 어땠나?
“당시는 암웨이 등 외국계 다단계가 주류였고, 자석요, 건강목걸이 등을 팔던 시기다. 해외업체 영업 방식을 배워 국내업체가 우후죽순처럼 막 생겨났다. 몇몇 빼고는 대부분이 불법이었다. 강매나 폭리로 물의를 빚는 회사가 뉴스에 나왔지만 단속이나 수사가 활발하진 않았다.
특히 IMF 외환위기 여파로 경제가 얼어붙자, 당시 정부는 규제를 풀었고 카드사는 신용카드를 마구 발급했다. 직장이 없고, 벌이가 시원찮아도 1인당 4~5개씩 있었다. 이게 다단계업체 매출을 올려줬다. 우리도 장뇌삼으로 하루 카드매출만 2억~3억원씩을 찍었다.”
- 처음부터 사기치려고 마음 먹은 것인가?
“그때는 제대로된 법(유사수신규제법)이 없었다. 95년 만들어진 방판법(방문판매법)에도 상품의 가격제한, 수당의 기준(현재는 판매금액의 35% 이내) 등이 구체적이지 않았다. 물론 다단계판매업 등록도 안했으니 불법이었다. 상품 판매는 투자를 받아내기 위한 수단이고, 폭리를 취하거나 허위·과장 광고를 했던 것은 인정한다. 누군가 문제 삼았으면 사기죄가 됐을 것이다. 다만 조희팔처럼 갑자기 회사를 접고 돈 들고 튈 생각은 진짜 없었다. ”
- 회사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했나?
“처음 6개월은 직원을 3명 두고 현금, 수표, 카드를 각각 따로 받을 정도였다. 실버, 골드, 에메랄드 등 총 13단계로 등급을 짰고, 본부장(최상위 등급 회원) 10명에 지방본부 7곳을 뒀다. 회원은 총 1만여명까지 늘었고, 매출은 400억~500억원 가량 됐다. 한의사와 투자전문가 등을 초청해 특강도 하고, 영업 자세와 매너 등은 내가 가르쳤다.
수당은 1주일에 한번씩 줬다. 등급별로 유지해야하는 매출액 기준이 있어, 수당을 받으려면 자기 돈을 넣어서라도 실적을 올리도록 유도한다. 실제 하위 등급은 아예 없거나 몇 만원 수준이고, 상위 5개 등급에 올라서야 수십만원에서 200만~300만원 정도 받았다. 여느 업체들이랑 비슷했다.”
- 어떻게 했길래 단기간에 그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나?
“강원도의 농장과 계약해 장뇌삼을 공급받아 여섯 뿌리, 한 박스에 330만원씩 받았다. 12 뿌리는 500만원에 팔았다. 서울 경동시장에서 괜찮은 거 한 뿌리에 2만5000원 정도였다. 20배 비싸게 판 것이다. 그런데도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장뇌삼이 좋아 샀겠나. 돈만 받으면 불법이기 때문에 장뇌삼을 파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다.
핵심은 ‘투자를 많이 끌어올 수록 고리(高利)의 이자(수당)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회사가 실제 투자를 해 수익을 돌려주는 게 아니라, 투자받은 돈으로 먼저 투자한 회원들의 수당을 나눠주는 점이다. 나머지는 운영비 등으로 회사가 쓴다. 내가 나올 때 회사 통장엔 50억원 넘게 쌓여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등록된 합법 다단계업체는 총 122개, 판매원은 827만명이다. 이중 수당을 받는 판매원은 144만명으로 17%에 불과했다. 수당 총액은 1조6820억원으로, 전체 매출 4조9850억원의 33%. 수당의 55%는 상위 1% 미만 판매원이 받아갔다. 1인당 연평균 수당은 상위 1% 미만이 6491만원, 하위 70%는 7만원이었다.
- 요즘 불법 다단계 회사들과는 어떻게 다른가?
“요즘은 대학생, 주부, 노인 등 타깃층을 정해 공략하고, 불법 대출, 주가조작 세력과도 연계해 탈탈 털어먹는다고 하더라. 실체없는 코인으로 속이기도 하고, 합숙이나 감시 등으로 가정생활이 파탄 나는 피해도 준다고 들었다. 갈수록 악랄해지고 잔인해지는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심플했다. 인맥을 타고 구전(口傳)으로 영업했다. 가끔 본사에 모아 교육을 하는 게 전부였다. 회원도 20대에서 80대까지, 남녀노소 다양했다. 목사 부인도 있었고, 검사 모친도 있었다. 가족들을 데려와 소개시켜주는 회원도 있었다. 여름이면 관광버스 10대씩 대절해 야유회도 다녔다. 지금보다는 인간적이었다고 할까.”
- 왜 갑자기 그만뒀나?
“1년 쯤 돼가니 주변에 다단계 회사가 8개나 생겼다. 신생업체들이 높은 수당으로 회원들을 빼내갔다. 경쟁이 붙은 것이다. 다단계는 어차피 사람이 매출이니까 매출도, 회원수도 서서히 멈췄다. 회원들 불만이 점점 커졌다. 몇몇은 ‘사기’라며 환불을 요구하고, 상급자를 경찰에 고발했다. 계속 가면 회사도 망하고,사고가 나겠구나 싶었다. 그 무렵 검찰, 금감원 등도 단속을 강화하는 분위기였다. 마침 (대표를) 하겠다는 사람이 있어 자리를 내주고 나왔다.”
- 퇴임 후 회사는 어떻게 됐나.
“3년쯤 후에 파산했다고 들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붐이 일어 다단계업체가 하루 수십개씩 생기고, 없어지고 했다. 전국에 200개도 넘게 있다고 알려졌었다.”
- 그럼 회원들 돈은 몽땅 날리는 건가? 회사 직원들이 가로채나?
“정식으로 파산했다면 대표나 직원들이 가로채진 못했을 것이다. 그럼 횡령이나 배임으로 감옥 갔겠지. 운영하는 동안 월급이나 수당 등으로 많이 챙겨가는 수준이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투자 원금을 100% 되찾은 사람은 없을 거다. 등급이 높고 오래됐으면 수치상 투자 원금보다 더 벌어갔을 수는 있지만 이들은 수당의 상당 부분을 하위 회원들 관리하는데 쓰기 때문에 실제 얼마 못 가져간다. 상위 3개 등급 정도는 자기 투자금의 60% 정도 되찾지 않았을까 싶다.”
- 지금도 ‘다단계 사기’는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나한테 ‘(다단계) 강의해 달라’ ‘좋은 업체 소개해 달라’며 연락오는 사람들이 있다. 돈 벌고 싶은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는 잘 안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 비정상적이다 싶으면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 그래야 사기를 피할 수 있다. 특히 다단계 사기는 돈도 돈이지만, 인간관계를 망쳐버리기 때문에 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