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독(dock·배를 만드는 작업장)을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거제·통영·고성 조선 하청지회가 17일까지 47일째 점거하는 가운데,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7곳이 줄줄이 최근 폐업을 했거나 폐업하겠다고 대우조선 측에 전달했다.

삭발하며 호소했지만, 결국 문 닫는다 - 지난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대우조선해양 사내 협력사 ㈜삼주의 진민용 대표가 하청지회 파업을 규탄하며 삭발하고 있다. 진 대표는 이날“하청지회로부터 작업장 입구를 봉쇄당했고, 현장에 투입되는 작업자들은 협박 전화를 받아 출근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며“불법 파업에 남은 것이라고는 많은 부채와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뿐”이라고 했다. /독자 제공

17일 대우조선해양 등에 따르면 대우조선 사내 협력업체는 총 113곳으로 총 1만658명이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이 중 ㈜진형, 동광기업㈜, 영일산업㈜이 지난달 30일 폐업했고, 수호마린㈜, 용강기업㈜, ㈜삼주가 오는 31일, 혜성기업이 오는 8월 11일 폐업을 할 예정이다. 각 기업들은 하청지회의 이번 불법 점거로 경영상 직·간접적인 피해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청지회는 임금 30% 인상, 상여금 300% 인상, 노조 사무실 제공 등을 요구하고 있다. “목숨을 걸고 일해도 임금이 줄어드니, 하청 노동자는 거제와 조선소를 떠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각 협력사 관계자들은 “곧 불황이 걷힐 것이란 기대로 수년을 버텨왔는데, 일부 노조원 때문에 문 닫을 위기에 놓이니 막막하다”고 말한다. 불법 점거로 조선소에서 만든 배를 물에 띄우는 진수 작업이 중단되는 등 조선소 업무가 막히자 협력업체도 덩달아 일을 하지 못하게 돼 수입이 줄면서 버티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17일 오전 10시쯤 경남 거제시 옥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혜성기업의 현재우(37) 대표는 “일부 노조원들 때문에 오래 함께한 동료들이 일자리를 잃게 돼 너무나도 억울하다”고 했다. 이 회사는 대우조선해양의 협력사로 선박을 만들 때 높은 곳에서 작업하기 위한 발판 등을 설치하고 해체하는 업체다. 직원이 150명 정도 된다. 하지만 지난 12일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에 ‘폐업신청서’를 냈다. 8월 11일 문을 닫는다. 신청서에는 “하청지회 조합원들의 지속적인 업무 방해 및 최근 발생한 불법 파업으로 적자가 지속적으로 누적돼 더 이상 정상적인 경영이 어렵다”고 써냈다. 이 회사 직원 50여 명은 지난 14일부터 평일 오전 하청지회의 파업을 비판하는 내용의 집회도 열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일대에서 대우조선 임직원들이 파업 중단을 촉구하는‘인간 띠 잇기’행사를 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임직원과 가족 등 50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약 4.5㎞에 이르는 인간 띠를 만들어 '가족과 같은 우리 회사를 돌려주세요' '동료의 삶 파괴하는 파업 당장 중단해주십시오'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파업 중단을 촉구했다. /대우조선해양

경남 거제에서 나고 자랐다는 그는 원래 건설업 종사자였다. 하지만 거제의 핵심 산업은 조선업이라 생각해 미래를 보고 작년 4월 혜성기업의 전신인 성광을 인수해 대우조선 협력사 일을 시작했다. 당시에도 조선업은 여전히 불황이란 말이 많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고 했다. 창업 초기 대우조선해양 측이 신규 협력사에 주는 보조금 등을 받으면서 “곧 조선업이 살아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며 버텼다. 일감이 있을 때는 수입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많았다. 그럴 때면 사비와 은행에서 회사 명의로 받은 대출금 등으로 해결해왔다. 이렇게 받기 시작한 대출은 1년 새 6억원으로 늘었다.

그는 하청지회의 1독 점거가 그에게 결정타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 달 넘게 이어지는 독 점거를 지켜보며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업 자체가 중단되면서 회사 수입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원 월급에 대출금 이자 등 한 달째 비용 부담만 커졌다. 그는 “눈앞에 일이 있는데 일을 못 하고 폐업해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다”며 “빚을 내서라도 버텨보려고 했는데, 이제는 끌어다 쓸 수 있는 돈을 다 끌어다 썼다. 다음 달 직원 월급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혜성기업에서 15년 동안 일했다는 신길준(43)씨는 “우리 기업 직원들은 대부분 50대인데, 이제 다른 회사에 들어가서 어떻게 자리를 잡을지 걱정이다”라고 했다.

그는 또 지난해 8월과 10월 총 16명의 하청지회 소속 노조원을 채용한 것도 문제가 됐다고 주장했다. 원래 다른 협력업체 2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인데 조선 불황 속 그 업체들이 문을 닫자 현 대표가 채용을 했다고 한다. 주변에서 ‘노조원은 받지 않는 것이 좋겠다’며 말렸지만, ‘같이 잘 일해보자’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현 대표는 이들이 비조합원들에게 ‘너희만 돈을 적게 받는 것 알고 있냐’며 업무를 방해하고 조합 가입을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협력사도 사정이 비슷하다. 대우조선 도장 협력업체인 ㈜삼주도 그중 하나다. 이 회사 진민용 대표는 지난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삭발을 했다. 진 대표는 이날 “2017년 회사를 창업한 후 지금까지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대한민국 조선산업의 수주 호황과 맞물려 노력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 줄 알았다”며 “하청지회의 불법 파업으로 생산을 하지 못한 저희 회사는 결국 폐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도장 협력업체인 ㈜진형도 지난 6월 30일 문을 닫았다. 2019년부터 이 회사의 경리로 일해온 전모(23)씨는 “마지막 날 도장 아저씨들이랑 사직서 쓰면서 마지막 인사할 때 울컥하더라”며 “잘 다니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파업 때문에 문을 닫으니 너무 억울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도 막막하다”고 말했다.

다른 협력사들 사이에서도 “폐업은 간신히 피했지만, 상황이 너무 막막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대우조선해양의 한 협력사 대표는 “이런 식으로 독이 점거되면 고스란히 대표들이 빚을 내서 월급을 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또 다른 대표는 “지난 4월부터 조선업 업황이 점차 나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청지회 등이) 이 순간에 파업을 하면 쉽게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이날 하청지회 점거와 관련해 “불법행위에 따른 국민 경제의 현저한 피해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가 공권력 집행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