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이 숨지고 41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경기 과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와 관련, 감사원이 지난해 말 국토교통부에 터널형 방음 시설의 화재 시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토부는 지난 2012년 방음 시설에 ‘불연성’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기존 지침을 삭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방음터널에 불연성 소재를 쓰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감사원은 30일 “지난해부터 국토부 산하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등을 대상으로 ‘광역교통망 구축 추진 실태’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감사 과정에서 국토부에 ‘터널형 방음 시설의 화재 안전 기준 보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국토부에 경고한 시점은 지난해 말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토부는 방음터널의 안전을 개선하기 위한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국토부는 올해 4월 ‘터널형 방음 시설의 화재 안전 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고, 7월에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이와 관련,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 (대책 수립과 시행을) 계속 미뤄 왔던 정부의 업무 태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국토부는 또 도로 건설 공사 기준을 담은 ‘도로설계편람’을 2012년 개정하면서 방음 시설에 ‘불연성’ 또는 ‘준불연성’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기존 지침을 삭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에 제정된 도로설계편람에는 “방음벽에 사용되는 재료 중 외부는 불연성 또는 준불연성이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도로설계편람이 2012년 개정되면서 이 부분이 삭제됐다.
29일 발생한 이번 화재 피해가 커진 것은 방음터널의 천장과 벽면에 가연성 소재인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이 사용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일종의 강화 플라스틱인 PMMA는 강도가 세고 강화유리보다 저렴해 많이 사용되지만 화재에 취약하다.
전문가들은 불연성 소재 사용을 강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상만 한국재난안전기술원장은 “방음터널 전체 시설물에 강화유리나 불연성 소재를 쓰도록 관련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손원배 초당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도 “독일, 일본 등에서는 방음터널에 강화유리를 사용한다”고 했다.
화재 당시 진입 차단 시설이 작동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도 있다. 사고가 난 도로를 관리하는 ‘주식회사 제이경인연결고속도로’에 따르면 화재 당시 성남→안양 방향 터널 입구에 있는 진입 차단 시설이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제2경인고속도로 관계자는 “상황실 근무자가 폐쇄회로(CC)TV 등으로 비상 상황을 인지해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방식이나 화재로 전력 공급이 끊겨 차단 시설을 작동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망자 5명은 모두 성남→안양 방향 진입 차량에서 나왔다. 사망자들은 터널 입구로부터 200~300m 지점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과 현장 합동 감식을 실시했다. 경찰은 이번 화재가 5t 폐기물 운반용 트럭의 화물칸 우측 전면 하단부에서 시작돼 바람을 타고 방음벽에 옮겨붙은 것으로 파악했다. 경찰은 트럭 운전자 A씨를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안양에서 성남 방향으로 가던 중 갑자기 ‘펑‘ 소리가 나고 조수석 하부에 불이 붙었다. 바깥 차선에 주차한 뒤 소화기로 끄려다 실패해 대피했다”고 진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