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의 제2경인고속도로를 달리던 5t 트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트럭 주변에 있던 차량 운전자 등 5명이 숨지고 3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소방 당국과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49분쯤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인근 갈현고가교에 설치된 방음(防音) 터널 내부를 달리던 폐기물 수집 트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길이 시작됐다. 불은 금세 트럭에 실려있던 폐기물로 옮겨붙으며 거세졌고 이윽고 방음 터널 벽면과 천장을 태우기 시작했다.
소방 당국은 플라스틱 재질의 천장이 사실상 불을 번지게 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 총길이 840m 터널 중 600m를 태우는 데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터널 화재를 진압하려 소방과 경찰 259명과 소방 헬기 3대 등 진화 장비 98대가 동원됐다. 소방은 오후 3시 18분 큰 불길을 잡았고, 불이 난 지 2시간여 만인 오후 4시 12분 불을 완전히 껐다.
하지만 이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뒤였다. 강화 플라스틱 소재로 된 방음 터널 천장이 타면서 유독가스가 뿜어져 나왔고, 지붕에서 불똥이 잇따라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등 터널 내부는 아비규환의 상황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왕복 6차로에 이르는 터널 내부가 모두 불길에 휩싸였고 연기 속에서 달리던 차량들이 서로 부딪히는 사고도 잇따랐다고 한다.
특히 차량과 방음터널 지붕이 타면서 발생한 매캐한 검은 연기가 대량으로 나온 탓에 터널 내부가 ‘가스실’처럼 됐다는 증언도 있었다. 그 와중에 터널 안에 있던 차량의 운전자들이 제때 빠져나오지 못하고 질식하면서 피해가 확산했다는 것이다. 물에 적신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으며 간신히 빠져나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화재 당시 연기로 가득 찬 터널 안에 고립돼 불에 탄 차량이 45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날 화재로 숨진 5명도 모두 트럭 주변의 차량 4대에서 발견됐다. 소방 당국과 경찰은 정확한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유독가스를 많이 들이마신 탓에 숨진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부상자 37명 가운데에선 3명이 얼굴에 화상을 입어 중상이고, 나머지 34명은 지나치게 연기를 많이 마셔 병원 등에서 치료받았다. 화재가 시작된 트럭의 운전자는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사고 원인과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소방과 경찰은 특별조사팀을 꾸려 이날 밤늦게까지 정확한 화재 원인 분석 작업을 벌였다.
5명이 숨진 29일 제2경인고속도로 갈현고가교 화재는 밀폐된 방음 터널 내부에서 불이 시작되는 바람에 피해가 더욱 컸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트럭에서 시작된 불이 그 차량을 태우는 데 그치지 않고 천장을 타고 터널 전체로 퍼져나간 탓이다. 소방에 따르면, 전체 터널 840m 중 600m가량이 전소될 정도로 거센 불길이 단기간에 번졌다.
현장에서 빠져나온 사람들과 당시 목격자들이 남긴 현장 영상 등을 보면, 불이 시작된 것은 5t짜리 폐기물 수거 트럭의 앞바퀴와 운전석 등 앞부분이었다. 여기서 시작된 불이 트럭에 실려있던 폐기물 등에 옮겨붙었고, 그 뒤에는 높이 5m에 가까운 천장도 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불이 천장에 옮겨붙은 뒤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지붕에서 불똥이 아래로 뚝뚝 떨어져 또 다른 차량들을 태우면서 터널 전체로 불이 번졌다는 것이다.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인 소방 관계자는 “엔진 등 차량 내부 결함이나 운전자의 부주의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원인을 조사 중”이라고 했다.
당시 현장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는 김모(71)씨 가족들은 “터널 안에서 연기 때문에 앞이 안 보여 차들끼리 서로 들이받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면서 “차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대피하는 과정에서 열기에 양손과, 이마·정수리 등에 2도 화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이날 사망자 5명이 옮겨진 경기도 안양시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응급실에서는 사고 소식을 듣고 도착한 유족들의 절규가 이어졌다. 사망자 전모(66)씨의 사위 손모(39)씨는 “장인어른이 오후 2시쯤에 전화 와서 불이 났다고 말씀하신 뒤 연락이 두절됐다”며 “차량 안에 있던 시신이 불에 타서 훼손이 심해 가족들도 확인을 못 하게 한다. 지문으로 신원 조회도 되지 않아서 경찰이 보내준 차 번호판 사진을 보고 장인어른이 맞는다는 걸 겨우 확인했다”고 했다. 운전기사로 일하는 전씨는 이날 서울에서 근무를 마치고 경기도 시흥 자택으로 돌아오던 길에 변을 당했다고 한다. 전씨의 아내는 응급실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네 아빠 얼마나 뜨거웠을까. 그냥 차를 버리고 나오지” 하고 오열하다 쓰러져 딸의 부축을 받기도 했다.
머리에 화상을 입은 생존자 조모(59)씨는 동료와 차량에서 함께 탈출했지만 홀로 살아남았다. 건축일을 하는 조씨는 “인천에서 일을 마치고 성남으로 퇴근하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터널 안에서 연기가 보이더니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차 안이 뜨거워져서 동료와 뛰쳐나왔는데, 그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졌다는 걸 알게됐다”며 고개를 떨궜다.
8살 아들과 함께 차량에 있다가 탈출한 김선미(41)씨는 “처음에는 터널 앞쪽에서 하얀 연기가 나더니 사람들이 차를 버리고 탈출하는 것을 보고 급하게 차에 있던 기저귀에 생수를 적셔 아이 눈만 가리고 뛰쳐나왔다”고 했다. 탈출 과정에서 연기를 들이마셔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윤영인(60)씨와 김재숙(59)씨도 “광명 방면으로 가는 도중 하얀 연기와 함께 차들이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펑’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안 되겠다 싶어 차를 버리고 탈출했다”고 했다. 윤씨는 “차에 마침 수건과 생수가 있어 겨우 살았다. 수건을 물에 적셔 입을 막고 100m 정도 뛴 것 같다”고 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이날 50명 규모로 화재 사고 수사를 위한 수사본부를 편성했다. 처음 불이 시작된 트럭의 운전자를 대상으로 수사를 시작한 상황이다. 30일 오전 10시 30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합동으로 트럭에 대해 감식도 벌일 예정이다.
한편 이날 화재 여파로 온 종일 주변도로에서 극심한 정체가 나타났다. 경찰은 화재 현장인 방음 터널에 대해 양방향 진입을 통제하고, 인근 차로에서도 차량을 우회시켰다. 소방 당국에는 화재 발생 직후 주변을 지나던 운전자와 인근 주민의 119 신고가 200건 넘게 들어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