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방·고등법원 전경. /조선DB

“선처해주신다면 피해자 분 몫까지, 제 꿈을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지난 18일 대구지법 형사 11부(재판장 이상오) 재판정에서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남성 A(22)씨가 재판부를 향해 호소했다. 방청석에 있던 피해자 B(23)씨의 유가족들은 A씨의 최후 진술 내내 고개를 젓다 이 대목에서 쓰러지다시피 앞좌석을 부여잡으며 소리 죽여 울었다. B씨는 지난해 7월 4일 친구들과 경북 안동을 찾았다가 A씨에게 흉기로 찔려 숨졌다. A씨는 재판에서 줄곧 “B씨 일행을 방어하기 위해 흉기를 휘둘렀을 뿐 살해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B씨 일행이야말로 방어적 행동을 한 것”이라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A씨와 B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쳐다보냐” 시비 걸고 흉기 3번 구입

22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비극은 제주와 포항 등 타지에서 경북 안동시에 방학을 맞아 놀러온 B씨 일행이 한 술집에서 A씨를 만나며 시작됐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A씨는 만취 상태에서 이 술집을 찾은 뒤, B씨 일행에게 “왜 쳐다보냐”며 먼저 시비를 걸었다. A씨와 B씨 일행은 이날 처음 본 사이였다.

B씨의 친구인 C씨 등 2명이 A씨의 어깨 등을 밀치자, 격분한 A씨는 인근 편의점에서 흉기 2개를 구입한 뒤 “나한테 대거리한 XX들 모두 죽인다”며 C씨에게 달려들었다. C씨가 흉기를 빼앗자 A씨는 윗옷을 벗고 다른 흉기를 휘둘렀으나, C씨가 A씨 다리를 걸어 넘어뜨려 제압했다.

분이 풀리지 않은 A씨는 다른 편의점에서 흉기를 확보한 뒤 이를 숨기고 B씨 일행에게 또다시 접근했다. A씨는 신고를 통해 경찰이 출동하자 잠시 범행을 중단했고, A씨 지인의 중재로 B씨 일행과 일시적으로 화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씨가 B씨 일행을 멸칭으로 부르며 조롱하자 C씨가 A씨를 밀쳤다. 화를 참지 못한 A씨는 또다른 편의점에서 마지막으로 흉기를 구매했다. 이날 A씨가 B씨 일행을 공격하기 위해 흉기를 구입한 횟수는 총 3번에 달한다.

안동 옥동 거리를 배회하던 A씨는 이동하는 B씨 일행을 발견한 뒤 흉기를 들고 접근했다. 이때 B씨가 A씨의 접근을 막기 위해 밀쳤고, A씨가 흉기를 휘둘러 B씨를 살해했다. A씨는 별다른 구조 조치를 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났다. B씨 친구들이 급히 119에 신고해 B씨를 병원으로 옮겼으나 B씨는 결국 숨졌다.

◇재판부 “살해 의도 충분히 인정”

지난 18일 국민참여재판 형식으로 열린 법정에서 검찰과 변호인 측의 쟁점은 A씨에게 살해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였다. 검찰 관계자는 “A씨가 B씨 일행의 집단 폭행에 맞서 방어적 목적으로 흉기를 썼다고 주장하나 이는 사실 무근”이라면서 “A씨가 먼저 시비를 걸고 수차례 흉기를 구입한 뒤, 인체 위험 부위를 집중적으로 공격한만큼 방어적 의도로 볼 수도 없다”며 징역 27년을 구형했다. 반면 A씨측 변호사는 “만약 A씨에게 살해 의도가 있었다면 자신을 폭행한 C씨에게 있었을 것이고, B씨에겐 없었을 것”이라며 “A씨가 뒷걸음질 치는 과정에서 공격한 행동에 살해 의도가 있었을지는 판단해볼 문제”라고 했다.

이날 참석한 배심원 9명은 만장일치로 A씨를 유죄 평결했다. A씨에게 살해 의도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세번에 걸쳐 흉기를 들고 찾아오는 A씨를 방어하기 위해 밀치고 넘어뜨리는건 B씨 일행 입장에선 너무도 당연한 방어적 행동”이라면서 “A씨가 먼저 물러날 수 있었음에도 시비를 건 다음 B씨를 정확하게 공격한만큼 살해 의도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A씨가 B씨 유가족을 포함한 피해자들에게 용서받지 못했고, 용서받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점 등을 종합했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A씨 측은 선고 이후 이틀만에 항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