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대구 번화가 동성로의 대중교통전용지구 도로에서 대구 공무원과 경찰이 몸싸움을 벌였다. 이날 열리는 대구퀴어문화축제(퀴어 축제)를 두고 축제 주최 측 차량 진입을 막는 대구 공무원 500여명과 집회 보장을 위해 차량 진입을 유도한 경찰 등 1500여명이 충돌하면서다. 대구시·중구 공무원들이 퀴어 축제 측 차량 앞을 막아섰지만 결국 30여분만에 대열을 이룬 경찰에게 밀려나면서 상황이 종료됐다.
올해 15회를 맞는 대구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 때아닌 ‘공무원 대결’이 벌어졌다. 퀴어축제는 지난 2009년부터 진행됐지만 행정 공무원과 경찰이 서로 물리적 충돌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소에 택시와 버스 등이 다니는 대중교통전용도로에서 진행되는 퀴어 축제를 두고 대구시 측은 “도로 불법 점거는 안된다”며, 경찰 측은 “합법 집회는 보장해야한다”며 서로 맞선 것이다.
이날 대구시와 중구 공무원들은 오전 7시부터 축제 현장인 대중교통전용지구에 모였다. 전날 홍준표 대구시장이 “도로를 점거해 시민 불편을 끼치는 집회를 용납할 수 없다”면서 대중교통전용지구 내에 평소처럼 버스를 운행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대구시 측은 도로법 74조를 근거로 부스 및 무대 설치 차량을 막는 행정대집행을 계획했다. 현행법상 원래 행정대집행을 하려면 일정 기한을 정한 뒤 문서로 계획을 알리고, 대집행영장을 발부하는 등 절차를 거쳐야한다. 하지만 도로법 74조는 도로의 통행 및 안전 확보를 위해 신속한 조치가 필요할 경우 이 절차를 건너뛰고 행정대집행을 할 수 있다.
대구시는 퀴어 축제가 도로 점용 허가를 받지 않고 대중교통전용지구를 축제 장소로 정한 것을 문제 삼았다. 이날 현장을 찾은 홍준표 대구시장은 “퀴어 축제를 하지 말라는게 아니라 도로를 점용 허가 없이 무단 점거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불법을 방조한 대구경찰청장의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반면 대구경찰청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근거로 퀴어 축제 차량 진입을 허용했다. 집시법 1조는 적법한 집회 및 시위를 최대한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퀴어 축제 역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신고된 집회인만큼 보장해야한다는 취지다. 지난 15일 동성로 상인회 등이 퀴어 축제 주최 측을 상대로 제기한 집회금지가처분 신청을 대구지법이 기각한 점도 경찰이 축제를 지원한 근거가 됐다. 당시 법원은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핵심 기본권인만큼, 이를 제한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축제 주최측이 도로를 점용 허가 없이 점거해선 안 된다’는 대구시의 견해에 대해 경찰은 부당한 요구라고 반박했다. 대구경찰청 공무원직장협의회연합은 성명문에서 “적법한 신고를 마친 집회에 도로 점용 허가를 요구하는 것은 집회를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변질시키는 일”이라면서 “검사 출신으로 법을 잘 아는 홍시장이 왜 이러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날 공무원과 경찰간 대치 상황은 홍 시장 발언 이후 공무원들이 철수하면서 풀렸다. 행정대집행이 무산되면서 퀴어 축제 역시 정상 진행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집회와 관련해 입건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구시 관계자는 “이번 행정대집행은 그간 도로를 무단 점거한 채 진행된 불법 집회를 시가 방관하지 않겠다는 취지”라고 말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