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고령군의 한 농장에서 기르던 암사자 한 마리가 우리에서 탈출했다가 1시간여 만에 사살됐다.
14일 오전 7시 24분쯤 고령군 덕곡면의 A씨 농장에서 ‘사순이’라고 불리던 암사자가 탈출했다. 사순이는 탈출 1시간 10분이 지난 오전 8시 34분쯤 농장에서 20~30m가량 떨어진 숲속에서 발견돼 수색 중이던 경찰과 엽사 등이 쏜 총에 사살됐다. 고령군 관계자는 “마취총을 쐈다가 빗나가면 도주할 수도 있어 주민 안전을 위해 사살을 선택했다”고 했다.
20살 가량으로 알려진 사순이는 몸길이 2m에 몸무게는 150㎏에 달한다. 멸종위기 2급인 ‘판테라 레오’종으로 작년 8월 A씨가 이 농장을 인수할 때 전 주인이 키우고 있던 사자다. 전 농장주가 2008년 암사자 사순이와 수사자 2마리를 사육했는데, 수사자는 먼저 죽었고 사순이만 A씨에게 인계됐다.
A씨는 이날 “사자를 키우고 싶어서 키운 게 아니다”라며 “한우를 방목해서 키우려고 농장을 인수했는데 와서 보니 사자가 있어 키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사자를) 내보내고 싶어 환경청에 물어 동물원에 기부하거나 대여하려고 했는데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고 했다. 맹수들은 새로운 개체가 들어오면 서열 다툼이 일어나기 때문에 동물원들이 꺼렸다는 것이다.
야생생물보호법에는 사자 같은 국제멸종위기종(CITES)을 수출입하거나 사육하려면 환경 당국에 신고해야 하고, 매년 시설 점검을 받도록 돼 있다. 사순이는 2008년쯤 경북 봉화군에서 고령군으로 옮겨질 때 신고했고, 사육 시설도 넓이 14㎡, 높이 2.5m 이상으로 허가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A씨는 사순이를 인수하면서 대구환경청에 양도·양수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사자에 대한 양도·양수 신고를 한 기록이 없다”며 “이 부분은 과태료 사안이어서 환경 당국에 이첩할 예정”이라고 했다.
사순이는 성격이 온순해 주민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농장 인근 캠핑장 방문객들도 사순이를 보러 와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는 것이다. 사순이 덕분에 이웃들에게 농장은 ‘사자 동산’으로도 불렸다. A씨는 “평소 생닭을 주로 먹였고, “사람이 쓰다듬어도 될 정도로 유순했다”고 했다.
사순이가 탈출한 직후 고령군은 재난안전문자를 보내 주의를 당부하며 “사자를 발견하면 119로 신고해 달라”고 했고, 인근 캠핑장 이용객 70여 명이 긴급 대피도 했다. 인근 성주군도 같은 내용의 재난문자를 보냈다. 경찰은 전날 오후 7시쯤 농장 관리인이 사순이에게 먹이를 준 뒤 우리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고 나온 사실을 파악하고 정확한 탈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한편, 사순이 사살 소식에 인터넷 게시판과 SNS 등에선 “평생을 갇혀 살다가 총 맞고 생을 끝냈다” “왜 마취총을 안 쏘고 바로 총을 쐈는지 모르겠다“는 등 안타깝다는 글들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