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기로 아내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대형 로펌 출신 변호사가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어... 우리 가족이 아픕니다” (신고자)

“가족이 남자분, 여자분, 아들, 딸?” (119 상황요원)

“아니 와이프” (신고자)

40대 아내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대형 로펌 출신 미국 변호사가 범행 이후 119에 신고한 기록이 공개됐다.

15일 소방청이 무소속 이성만 의원실에 제출한 119신고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A씨의 신고는 지난 3일 오후 7시 49분에 접수됐다. A씨는 “여기 구급차가 필요하다”고 운을 떼며 집 주소를 밝혔다. 가족 중 누가 아프냐는 질문에는 “와이프”라고 답했다.

119상황요원이 “아내분이 어디가 아파요. 배가 아파요?”라고 묻자, A씨는 “크게 다쳤어요. 머리도 다치고 크게 다쳤어요”라고 했다.

상황요원은 “의식은 있어요?” “부르면 대답해요?”라며 질문을 이어갔다. A씨는 “의식은 조금 있어요” “조금 반응은 하는데 크게 반응은 안 해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상황요원은 “선생님, 차는 가고 있고 제가 중요해서 여쭤보는 겁니다”라며고 말했다. 이어 “아내분 불러보세요. 입으로 말해요, 못해요?”라고 다시 환자의 상태를 물었다. A씨는 “말은 못 하는 것 같은데”라고 답했다.

A씨가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자, 상황요원은 “옆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전화를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A씨의 전화를 넘겨받은 건 그의 부친 B씨였다. B씨는 검사 출신 전직 다선 국회의원으로, 피의자가 사건 발생 직후 119보다 먼저 연락해 현장에 온 것으로 파악됐다.

B씨는 환자 상태를 파악해 응급 처치법을 알려주려는 119상황요원에게 “일단 빨리 좀 와주십쇼” “지금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예요” “지금 사고가 나서 피를 많이 흘리고 있거든요”라고 했다.

소방 구급활동 현황을 보면, 구급대는 신고 6분 뒤인 오후 7시 55분 현장에 도착했다. 구급활동 보고서에는 ‘접촉 당시 환자 무의식, 무호흡, 맥박 없다. 외상성 심정지 추정’이라고 적혔다. 구급대는 오후 8시 22분 서울대병원으로 가 의료진에 환자를 인계했다. 환자는 같은 날 오후 9시쯤 숨진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지난 3일 오후 종로구의 한 주상복합아파트에서 말다툼을 하다가 둔기로 아내를 때리는 등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가장 먼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이후 아버지가 범행 현장인 집에 도착한 다음에야 119에 “아내가 머리를 다쳤다”고 신고했다.

A씨는 지난 12일 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됐다. A씨는 국내 한 대형 로펌 소속 미국 변호사였는데, 사건에 연루된 직후 퇴직 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