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 1대가 폭발해 주변 차량 140여 대가 전소하거나 불에 그을렸고 주민 120여 명이 긴급 대피했다. 지하 주차장 내부의 전기 설비와 수도 배관이 불타 5개동 480여 가구의 전기와 물이 끊겼다.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다. 대피한 주민들은 인근 행정복지센터 등에서 ‘피난살이’를 하고 있다.
◇왜 이렇게 피해가 컸나
이번 사고는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의 위험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2일 인천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화재는 전날 오전 6시 15분쯤 지하 1층 주차장에 주차된 벤츠 EQE350 전기차에서 시작됐다. 당시 지하 주차장 보안 카메라 영상을 보면, 차량에서 흰 연기가 나더니 갑자기 폭발하며 불길이 치솟았다. 환기가 원활하지 않은 지하 주차장은 순식간에 유독 가스로 가득 찼다. 소방은 전기차 화재 때 쓰는 ‘이동식 수조’도 준비했지만 짙은 연기와 배터리의 열폭주(전기차 배터리가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현상), 거센 열기 때문에 지하 주차장에 진입하지 못했다고 한다. 전기차 배터리에서 나는 불은 일반 소화기나 소화전으로 끄기 어렵고 물이 담긴 이동식 수조에 차량을 통째로 빠뜨리는 방식으로 끈다.
소방은 배연 차량 등을 동원해 지하 주차장을 가득 메운 연기부터 빼낸 뒤 화재 진압을 시도했다. 하지만 여러 차량이 빽빽이 주차된 비좁은 주차장에서 이동식 수조를 쓸 수가 없었고, 소방대원들은 호스를 빼들고 차량 하부의 배터리 등에 집중적으로 물을 뿌렸다고 한다. 그러나 화염이 치솟고 불이 주변 차량으로 계속 번지면서 진화에 8시간 20분이 걸렸다. 그 사이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우리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인데 겁난다’ ‘전기차 불안해서 어떻게 타느냐’ ‘인명 피해가 없어서 천만다행’ 등 글이 올라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예방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전기차는 불이 나면 연쇄적으로 폭발해 가솔린·디젤차 화재보다 10배 이상 진화하기 어렵다”며 “전기차 주차장을 지상에 두거나 화재를 조기에 감지할 수 있는 센서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기차 주차장에는 더 많은 물을 뿌릴 수 있는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주민 손해는 어떻게 하나
보상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전기차 1대에서 시작된 불로 아파트 입주민들까지 피해를 봤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 4층에 산다는 주민 A(63)씨는 “집 안 스프링클러가 터져 TV, 소파가 다 젖었다”며 “검은 분진도 온 집에 쌓였다”고 했다.
손해보험 업계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전기차 차주가 주민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 이 차주가 가입한 보험의 보장 한도 안에서 배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자동차보험의 보장 한도로는 턱없이 부족할 가능성이 크다. 차량이나 배터리 결함이 드러나면 전기차 제조사인 벤츠와 중국 배터리 업체의 배상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차주의 과실이 있으면 차주가 직접 배상해야 할 수도 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당시 충전 중인 상황은 아니었다고 한다. 다른 주민들은 각자 가입한 자동차보험의 자차(자기차량손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이날 오전 합동 감식을 했다. 8일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합동 감식을 할 예정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해마다 전기차 화재는 증가하는 추세다. 2021년 24건에서 2023년 72건으로 2년 새 3배가 됐다. 최근 3년간 발생한 전기차 화재 139건을 분석해보면 운행 중 발생한 사고가 68건으로 가장 많았고 주차 중 화재도 36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