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경찰서에 재직 중이던 현직 경찰이 도박판에서 압수한 돈을 훔쳤다가 현재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시민들 사이에선 “버닝썬 사태에 이어 또 다시 강남경찰서” “강남경찰서는 예전부터 범죄 온상” “능력과 청렴, 신뢰가 모두 없는 경찰서”라며 비판했다.

일각에선 “부패 형사를 주제로 했던 영화 투캅스(1993년작)가 떠오른다”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강남경찰서는 몇 달 전 죄 없는 사람을 성범죄자로 몰았던 경기동탄경찰서와 함께 ‘최악의 경찰서 2곳’ 중 하나”라는 여론이 나왔다.

각종 빌딩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전경. /조선DB

◇대한민국 부(富)의 상징 강남, 경찰서는 3無의 상징?

강남경찰서는 1976년 대치동 삼성역 인근에 개서(開署)했다. 한창 강남 개발을 진행해 온 1970년대에 강북에서 인구가 내려오면서 치안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강남구에는 강남경찰서와 함께 수서경찰서가 있다. 강남의 상징인 테헤란로를 기준으로 북쪽(압구정동·청담동·신사동)은 강남, 남쪽(대치동·수서동·도곡동)은 수서 관할이다.

강남경찰서의 비리와 무능은 최근만의 일은 아니다. 경찰의 비리와 비위, 무능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떠오른 1990년대부터 강남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은 언론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1990년 ‘이형호군 유괴살해사건’ 당시 수사 소홀 책임을 물어 경찰서장·형사과장·형사계장이 모두 직위 해제됐고, 1992년 5월에는 심야영업 행위에 대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고경욱(사건 당시 44세) 경장과 석종복(당시 33세) 순경이 업소 주인들과 2시간 가까이 포커판을 벌이다 입건됐다.

1993년 서울지방검찰청(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사건 브로커인 변호사에게 사건을 알선해주고 사례비를 받은 경찰들을 찾아내 징계하게 했는데, 강남경찰서에서만 무려 32명이 적발됐다. 송파경찰서가 8명, 용산·관악경찰서가 1명이었다.

이듬해인 1994년 토지 사기범들을 협박해 2000만원 상당의 컴퓨터 부품을 뜯어낸 강남경찰서 논현파출소 차광득(사건 당시 44세) 경장도 구속됐다. 1998년에는 경찰과 구청 공무원들이 대형 술집 주인들로부터 매달 500만~1500만원씩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결국 파면됐다. 이들은 술집에게 미리 단속 정보 등을 알려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구(舊) 강남경찰서 전경. 2017년 현재 건물로 재건축됐다. 경찰서 입구에 '대한민국 대표경찰! 강남경찰'이 적혀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 홈페이지

◇‘투캅스’는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이는 소위 ‘낭만의 시대’라고 불리던 20세기 만의 일은 아니었다. 2003년에는 강남경찰서 소속이었던 전직 경찰이 5인조 강도를 하다가 적발됐다. 그런데 이 사건 적발 전날 당시 한 지상파 방송국에서 강남 한복판서 한 여대생이 6인조 납치단에게 납치, 살해된 것을 보도했다.

경찰은 수사 관계자들이 특정 언론에 사건을 알려줬다며 당시 강남경찰서장과 형사과장, 계장을 직위해제했다. 이때 형사과장이 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이다.

2008년에는 본드 흡입 혐의로 체포한 정모(사건 당시 31세)씨를 경찰서까지 연행했다가 놓치는 촌극이 빚어졌다. 정씨는 경찰서 현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게 해달라고 했다가 도로로 달아났다. 그러나 당시 경찰 관계자들은 상부에다 “혐의가 없어 풀어줬다”고 거짓 보고를 했다.

경찰은 이러한 문제가 불거지자 1999년과 2003년, 2009년에 강남경찰서에 대규모 인사를 했다. 2009년 경찰은 강남·서초·수서에서 8년 이상 근무한 직원을 전보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당시 일선 경찰들은 “강남에 있으면 비리 경찰이냐” “요새는 강북 지역이 더 인기” “소수의 비리에 왜 우리가 연대 책임지느냐”며 반발했다.

지난달 3억원 상당의 도박판 압수금을 빼돌린 경찰 정모씨가 법원으로 향하는 모습 /YTN 유튜브

그러나 이 정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2009년 7월 역삼지구대 경찰관들이 유흥업소를 다니며 지속적으로 뒷돈을 받다가 17명이 파면, 해임됐다. 3년 후인 2012년에는 룸살롱 운영으로 고발된 양은이파를 옹호하며 오히려 이를 고소한 여성단체에게 고소 취하를 종용했고, 그 해 한 경찰은 고소·고발 사건에 대해 편의를 봐주며 한 업체 대표로부터 12억원을 받아 구속됐다.

룸살롱 황제라 불리던 이경백씨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받은 경찰들도 적발됐다. 이씨는 당시 지명수배를 받고도 버젓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서울 강남·서초 일대서 룸살롱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을지훈련 기간 동안 관련 기관으로부터 통닭을 받은 강남경찰서 간부가 문책성 전보 조치를, 2014년에는 피의자로부터 수 천만원을 받은 강남경찰서 출신 경찰들이 구속됐다. 2015년 ‘정운호 게이트’ 때는 법조 브로커 이동찬씨로부터 사건 무마를 대가로 8900만원을 받은 강남경찰서 지능범죄수사과장 구모 경정이 구속됐다.

◇비리의 결정타, ‘버닝썬 게이트’

경찰이 폭력, 마약, 성폭력, 경찰 유착 등의 혐의로 승리가 운영하는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승리, 버닝썬 입구, 역삼지구대 모습

강남경찰서가 언론과 시민들의 가장 큰 질타를 받았던 것은 지난 2019년 ‘버닝썬 게이트’때였다. 당시 클럽 버닝썬 지분을 소유한 회사의 대표가 강남경찰서 경찰발전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각종 유착 의혹이 붉어진 것이다. 경찰은 버닝썬 게이트 제보자 김상교씨를 체포했는데, 이 과정에서 경찰은 김씨에게 폭행을 가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당시 강남경찰서 생활안전과장으로 근무하던 한 경찰이 빅뱅 승리(34·본명 이승현)에게 ‘경찰총장’이라고 불리며 이들의 범죄를 무마해줬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서울경찰청은 같은 해 하반기 정기 인사에서 강남경찰서에서 근무하던 직원 852명 중 152명(17.8%)을 전출시켰고, 당시 강남경찰서장은 대기발령 조치됐다. 이를 계기로 강남경찰서는 당시 제1호 특별 인사관리구역(경찰의 비리 발생 위험도가 높은 구역)으로 지정돼 특별 관리를 받았다.

그러나 특별 관리가 무색하게 강남서 소속 경찰의 비리는 계속됐다. 지난 3월에는 기자와의 술자리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킨 전 범죄예방대응과장 김모 경정이 대기발령 조치됐다. 이달 초엔 지난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서울강남경찰서 생활질서계에서 유흥 업소 단속 업무를 담당하면서 업소 관계자에게 금품을 건네받은 혐의를 받는 A경위가 직위해제됐다. 경찰은 지난 7월 강남경찰서의 특별 인사관리구역 지정을 3년 연장키로했다.

◇전문가 “돈이 몰리는 강남경찰서…일벌백계”

서울 강남경찰서 전경.

경찰 전문가들은 액수가 큰 경제 범죄가 자주 벌어지는 강남경찰서의 특수한 위치를 지적했다. 압구정과 청담 등 유흥업소와 기업이 많은 지역들을 관할하고 있는 ‘돈과 사건’이 쏠리는 지역이라 비리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학교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강남경찰서는 부자 동네를 관할하고 관내에 기업도 많기 때문에 경찰 입장에선 범죄 기회나 대상, 유혹이 다른 일선서에 비해 많은 편”이라며 “특별 인사관리구역으로 지정해 재직자를 전출 보내는 피상적인 방안으로 대처하기보다는 서울청 등 상급기관이나 외부 위원회를 통해 대대적인 감찰을 하는 식으로 경찰 내부 관리, 감독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비리를 저지른 경찰관에 대해서는 일벌백계를 통해 범죄 유착으로 인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는 걸 보여줄 필요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