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일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 인천 서구 청라동의 한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 내부. /뉴스1

지난 8월 인천 청라국제도시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 사고의 정확한 원인을 경찰이 밝혀내지 못했다.

인천경찰청 형사기동대는 28일 “배터리 외부 손상 가능성, 배터리 내부 문제에 따른 발화 가능성 등을 모두 확인했으나,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배터리의 전류·전압·온도 등이 정상 범위 내에 있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이 화재로 손상돼 관련 데이터를 추출할 수 없었던 점도 화재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불이 난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 팩과 BMS를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감정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배터리 팩 내부의 전기적 발열에 의한 발화 가능성과 함께 외부 충격에 배터리 팩이 손상돼 화재가 발생했을 수 있다는 소견을 경찰에 전달했다. BMS는 화재로 인해 영구적으로 손상돼 데이터를 추출할 수 없었다.

경찰은 국과수 소견을 토대로 화재 차량을 만든 벤츠를 상대로 배터리 팩 제작 과정 등을 살폈으나,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 또 대학 교수를 비롯해 한국자동차안전연구원, 국립소방연구원 등 관계기관 전문가 16명에게 자문했으나, 역시 정확한 화재 원인은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불이 난 벤츠 전기차의 정비이력과 운행이력 등도 조사했지만, 차량 하부에 충격을 줄 만한 상황을 발견하지 못했다. 벤츠 코리아와 독일 벤츠 본사 관계자에 대한 참고인 조사에서도 혐의점은 드러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벤츠가 중국 모 업체로부터 배터리 셀을 공급받아 자체 기술로 배터리 팩을 제작해 차량에 장착했고, 관련 리콜 이력도 없었다”며 “2023년 11월과 지난 4월 진행된 차량 정기 점검에서도 문제가 없었고, 차량 하부에 외부 충격을 줄만한 운행 이력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88건을 분석했지만 대부분 교통사고 등 충격이 발생한 뒤 불이 난 사례였고, 충전 중도 아닌 주차된 전기차에서 저절로 화재가 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지난 8월 인천 서구의 한 정비소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에 대한 합동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경찰은 이번 화재 사고와 관련,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A씨 등 4명을 업무상과실치상 등 혐의로 입건해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A씨 등은 지난 8월 1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 당시 안전관리 등을 제대로 하지 않아 입주민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화재 경보음이 울리자 스프링클러 작동을 멈추기도 했다.

당시 화재로 입주민 23명이 연기를 마셔 병원 치료를 받았다. 또 주차장에 있던 차량 87대가 타고, 783대가 그을리는 피해가 발생했다. 연기를 마신 23명 중 3명은 경찰에 상해 진단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A씨는 경찰에 “경보기 등 소방시설이 오작동하면 아파트 입주민들이 항의할 수 있어 일단 스프링클러를 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입건된 피의자들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장과 총괄 소방 안전관리자 등으로, 화재 대응 교육이나 훈련을 하지 않는 등 안전 관리를 적절하게 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