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는 작년 7월부터 ‘노인 일자리 홍보 전문가’라는 노인 일자리 사업을 시작했다. 유튜브와 블로그 등에서 대구시 노인 일자리를 홍보하는 일로, ‘노인 일자리를 홍보하는’ 노인 일자리인 셈이다. 하루 5시간씩, 주 3회 일하는 조건으로 월 최대 71만원가량을 받는다.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울산광역시 태화강 강변에서 고령자들이 환경 정비 사업을 하고 있다. /울산광역시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는 70대 A씨는 ‘구술생애사’라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하루 3시간씩, 주 2~3회 또래를 인터뷰해 그의 자서전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그는 이 일로 월 27만원을 받는다. A씨는 “또래를 만나 고달픈 인생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데, 생계에도 보탬이 돼서 더 좋다”며 “코로나로 잠시 중단됐지만, 빨리 사업이 재개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정부의 이런 ‘노인 일자리’ 사업에 대해 “일자리 사업보다 복지 사업 측면이 강하다”며 “고용 통계에 노인 일자리 사업을 반영하는 것은 실제 고용 현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이런 내용은 입법조사처가 2일 공개한 ‘2021년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 담겼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급증한 노인 일자리 사업의 문제점에 대해 입법조사처가 공식 문건으로 비판하기는 처음이다.

입법조사처 지적처럼 노인 일자리는 고용 통계에서 심한 착시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본지가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고용률은 60.1%를 기록했지만, 노인 일자리를 제외하면 58.4%로 1.7%포인트나 떨어졌다.

노인 일자리 규모, 자료=보건복지부

입법조사처가 이례적으로 노인 일자리의 통계 왜곡 문제를 지적한 것은 현 정부 들어 노인 일자리가 급격하게 늘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 출범 첫 해인 2017년 49만6000명이었던 노인 일자리 사업 규모는 이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76만9000명까지 늘었다. 올해는 78만5000명이 목표다.

이지만(경영대학장) 연세대 교수는 “실제로는 복지 예산으로 나가야 할 돈이 일자리 사업이란 이름만 씌워진 채 지출되고 있다”며 “정부 입장에서 낮은 고용률을 올리는 하나의 방책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간 노인 일자리 사업이 고용 통계를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이어졌다. 노인 일자리가 아무리 단기 아르바이트에 가까운 일자리라고 해도 정부 통계에선 정식 취업자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취업자를 계산하는 통계 기준이 ‘수입을 목적으로 일주일 사이에 1시간 이상 일한 사람’이어서 벌어지는 일이다.

◇노인 일자리가 고용률 끌어올려

지난 2017년 15세 이상 인구 대비 취업자 비율을 뜻하는 고용률은 60.8%였다. 하지만 노인 일자리 사업 참가자 49만6000명을 취업자에서 제외하고 다시 계산하면 고용률은 59.7%로 떨어진다. 노인 일자리 사업이 고용률을 1.1%포인트 끌어올리는 ‘통계 착시 효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노인 일자리 규모가 커지면서 이 착시 효과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는 1.7%포인트(60.1%→58.4%)까지 차이가 벌어졌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정부‘노인 일자리’사업이 고용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지난 2019년 서울시 한 구청에서 열린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통합 모집 행사. 한 노인이 일자리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정부가 일자리 창출 목적으로 고용주가 되는 ‘직접 일자리’ 중 노인 일자리 비율은 약 76% 수준이다. 거의 대부분이 노인 일자리이긴 하지만, 직접 일자리로 계산 범위를 확대하면 그 차이가 더 심해진다. 지난해 60.1%였던 고용률은 직접 일자리 전체(94만5500명)를 제외하면 2.1%포인트 낮은 58%까지 떨어진다.

정부는 이런 문제점이 지적될 때마다 “취업자 정의는 국제 기준이라 바꾸기 어렵다”고 해 왔다. 하지만 입법조사처는 “노인 일자리를 고용 통계에 반영하는 방법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보완 조치를 요구했다. 해당 보고서를 쓴 기준하 입법조사관은 “노인 일자리를 취업자에서 제외하는 보조 지표를 만드는 등의 방법이 가능할 수 있다”며 “일자리 지표에서 단기 일자리를 제외해야 일자리 통계의 왜곡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양적 확장 치중...질적으론 미흡

입법조사처는 노인 일자리 자체 의미는 있다고 봤다. 단순 일자리 사업이라기보다는 노인들에게 소득을 보전해주면서 노인 빈곤 문제를 완화하고, 신체 활동을 하게 해 의료비를 절감하며, 사회생활을 하게 해줘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정부가 노인 일자리 정책을 추진하는 기본 취지는 인정한 것이다. 경기도 안산에서 88세 어르신 집에 찾아가 청소와 말벗 등을 해주는 ‘노노케어’ 노인 일자리에 참여 중인 B(75)씨도 “이 일로 월 27만원을 받는데, 나한테는 반찬값을 해결할 수 있는 돈”이라고 했다.

하지만 입법조사처는 노인 일자리가 양적으로만 급속하게 팽창했을 뿐, 질적으로는 문제가 있다고 봤다. 보고서는 “관리 인프라가 부족해 부정 수급 문제나 반복 참여 증가 등 사업이 부실하게 운영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노인들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를 만들기보다는 단순히 활동 가짓수를 늘리는 데 치중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내부 평가는 딴판이다. 지난달 고용부는 정부 전체 일자리 사업에 대한 평가 결과를 공개했는데, 노인 일자리 사업에 대해선 별 문제가 없다는 ‘양호’ 등급을 매겼다. 보건복지부 담당자는 “노후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노인 인구 비율이 늘고 있어 정부 입장에선 어떻게든 노인 일자리를 늘리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