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노동시장연구회 좌장을 맡고 있는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가 올해 8월 서울 중구의 한 회의실에서 연구회 논의 사항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뉴시스

“(연차가 쌓일수록 월급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연공형 임금 체계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 확대도 검토 중입니다.”

임금 체계와 주 52시간제 개편 등 윤석열 정부 노동시장 개혁의 구체적 방안을 논의하는 전문가 그룹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연공형 임금체계에 대한 날선 비판을 내놓고, 근로시간 제도 개편에 대한 논의 방향을 일부 공개했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좌장을 맡고 있는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17일 서울 중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그동안의 논의 과정을 소개했다. 정부는 연구회가 앞으로 만들 예정인 권고안을 바탕으로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할 예정이다.

◇연공급, 2030에겐 매력 없고 50대도 불안하게

권 교수는 이날 연공형 임금 체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위원회의 문제 의식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호봉제로 대표되는 연공형 임금 체계는 직무나 승진과 상관 없이 연차가 쌓일수록 급여가 자동으로 올라간다. 미국, 유럽 등에선 찾아보기 어렵고 일본과 우리나라에 주로 있다. 젊은 시절에는 생산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아도, 나이가 들수록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이 특징이다.

권 교수는 이에 대해 “장기 고용을 전제로 연공을 쌓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배타적으로 유리한 임금체계”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수혜대상을 “대기업 정규직 남성 근로자”라고 콕 집어 말했다. “대기업 정규직 여성들은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로 연공을 쌓는데 손해가 발생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연공을 쌓을 수 없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연공형 임금체계가 “당장의 생산성보다 임금을 적게 받는 연공급이 최근 입사한 20~30대 근로자에게 매력이 없다”고 했다. “과거에는 연 10% 수준의 경제 성장으로 기업 규모가 계속 커지고 인력 수요도 계속 늘어나며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할 수 있었지만, 연 2% 수준의 성장률을 보이는 지금은 다니는 회사가 대기업이어도 평생 직장이 될 확률이 과거보다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연공형 임금 체계가 장년층에게도 불리하다고 했다. 연공형 임금 체계로 50세가 넘어가면 대기업 근로자도 회사에서 나가라는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고, 정년 연장 요구에도 불리하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연공형 임금 체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회사들이 정년 연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이러 한계를 노조도 엄밀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계 반대했던 선택근로제도 확대 검토

연구회는 ‘주 52시간제 개편’과 관련해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연장근로 단위 다원화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의 주 52시간제는 연장근로 한도를 일주일 단위로 계산하도록 하고 있고, 정부는 이 기간을 한 달로 늘려서 ‘월(月) 평균 주 52시간제’로 개편하는 방안을 구상 중인데, 이를 좀 더 확대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예를 들어 2주나 두 달, 석 달 처럼 지금까지 언급됐던 기간 외에 다른 선택지를 더 고려하고 있을 수 있다.

권 교수는 이날 “연구개발(R&D) 분야에 한해 3개월까지 확대됐던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다른 분야까지 더 확대·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라고 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란 일정 기간 주 평균 근로시간을 52시간 이내로 맞추면, 매주 52시간을 지킬 필요 없이 근로자가 자유롭게 출퇴근 시간을 정할 수 있는 제도다. 당초 최대 1개월까지만 허용됐는데, 2020년 12월 주 52시간제 보완 대책으로 연구개발직은 3개월로 허용 기한이 늘어났다. 당시에도 이에 대해 ‘주 52시간제 무력화’라며 노동계가 반발했었는데, 연구회는 이를 연구개발 외 다른 직군에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실제 현장에서 만나보니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더 활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근로자들의 목소리가 예상보다 많았다”고 했다.

권 교수는 다만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 결국 장시간 노동으로의 회귀 아니냐’는 노동계 등 일부의 우려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일·가정 양립과, 자기계발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할 것”이라며 “휴가 제도도 개편해 점진적으로 근로의 양과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